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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Nov 08. 2024

그때 난 숲이려나

- 음악, 그리고 내가 되고 싶었던 것.


     




사람들이 떠올리는 내 성격은 실제와 다를 때가 많다.


보통 내가 마음이 여려 잘 울 거라고 예상하는 것과 달리, 실 나는 잘 울지 않는다.


언젠가 주저앉아 가슴이 찢어질 듯 울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득하다.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일상의 작은 슬픔들을 제법 덤덤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데 능숙한 편이다.


어쩌면 언젠가 예상치 하게 찾아올 더 큰 슬픔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의외로 감정 기복도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책은 부담 없이 즐겨 읽는 반면, 영화나 음악 상대적으로 덜 접하게 된다.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책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라 편하지만, 영화나 음악은 불쑥 마음을 자극해 와서 어쩐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 음악을 찾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몸과 마음이 고단할 때 비로소 음악을 듣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간신히 음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필 햇살도 찬란한 5월.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나는 조용히 혼자 늙어가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그날도 정돈되지 못한 살림살이의 어수선함을 애써 뒤로 하고 아이 걱정을 하며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새벽까지 책을 붙들고 있어 눈이 뻑뻑했고, 몸살 기운 마저 있어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던 참이었다.


사람은 몸이 고단하면 이내 마음이 슬퍼지고, 슬픔은 무기력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책을 덮어 버리고 음악을 틀었다.    




# 음악을 틀어주세요 #


https://youtu.be/7ihLv8_Vd-4?si=pb7cKJElLcqZlrv5

- 최유리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난 저기 숲이 돼볼래

나의 옷이 다 눈물에 젖는대도

아 바다라고 했던가

그럼 내 눈물 모두 버릴 수 있나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밀어내지 마 날 네게 둬

나는 내가 보여 난 항상 나를 봐

내가 늘 이래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나의 눈물 모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기억할게 내가 뭍에 나와있어

그때 난 숲이려나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소한 노래를 무심히 듣고 있다가, 어쩐 일인지 왈칵 눈물이 나왔다.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운 나머지 나는 재빨리 옷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야 말았다.


마치 수도꼭지를 잠그려다가 실수로 반대로 돌려 물줄기가 쏟아졌다 다시 황급히 잠가버린 듯했다.


눈물은 거짓말인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다만 셔츠 소맷자락에 흐릿한 얼룩만이 꿈결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단순히 직업이나 성취와 같은 단단한 단어들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어떤 마음이었다.        

이를테면 바다이거나 숲과 같은 마음.


그 마음의 베일을 음악이 슬쩍 들추어낸 것이다.

      

노래가 계속 반복되어 흐를 때마다 눈물의 흔적은 점점 사라져 갔고,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다시 언젠가 찾아올 하릴없는 슬픔을 준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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