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빛 Oct 23. 2021

7. 이별 후 나를 사랑하면 생기는 일

고통 뒤에 가장 밝게 웃을 수 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천천히 했대. 여전히 화가 나는 일들도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몇 번을 이혼 사실을 모르는 지인으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 방송 방청객으로 화면에 잡히거나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보내거나 여행을 가거나 등등 사람들이 이렇게 그에게 관심이 많았는지 몰랐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했다는 말이 쉬워지고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해 화가 나지 않더래. 그리고 그녀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미소를 띨 수 있게 되었어.




 선배는 나를 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생각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은 채식주의자인 김영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한 언니”김인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남편도, 동생도 떠나간 그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내고 인내하며 끝내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고 했던 그 모습과 저는 분명히 닿아있었습니다. 선배는 아마도 처절하리만큼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김인혜”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저를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나를 몇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꼭 참기만 하는 것이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요.



 연애 오답노트
1.  내가 이별 후 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그 이유를 기록해보자.
2. 나와 같은 이유로 이별을 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를 생각해 보자.
3. 나는 열렬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를 사랑하는 아주 작은 실천들을 통해 처음 마주한 것은 저의 감정들이었습니다. 그 감정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잠시 나라는 사람을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마주했던 감정은 “억울함”이었는데 그 억울함의 내면에는 잊어야 하는 나의 20대에 대한 아까움도 함께 있었습니다. ‘헌신하니 헌신짝 되더라.’의 산 증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혼자 짐을 지고 가는 나에 대한 “연민”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된 “두려움”에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존경”, 그리고 “사랑”의 마음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만약 제일 친한 친구가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울고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객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가 외도를 할까.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못된 사람은 아닐까.’를 고민하고 의심하고 자책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충분히 슬퍼하고 앞으로는 웃어.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열심히 살았잖아. 힘든 일이지만 또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얼마나 다행이야. 이제는 너의 미래만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더 힘차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도전을 했습니다. 우선,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시간을 강제로 만들기 위해 유료 독서모임에 가입을 했고 그 모임을 통해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연이 닿아 자녀를 키우시는 각양각색의 삶을 사는 어른들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저와 종교적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생각을 넓혔습니다. 처음에는 실패 이유를 찾기 위해 참여한 모임이었고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의 성장과  “돕는 베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꼭 결혼생활이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같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연수에 신청을 했습니다.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전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어 도전을 했고 열흘 간 호주라는 나라에서 관심분야를 직접 보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고 세계일주를 꿈꾸던 10대의 심장을 다시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새 이름과 저의 성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분노와 이기심으로 그리고 이후에는 그는 회피로 아이는 돌이 지나고 아빠와 연을 끊게 되었습니다. 또 아이의 이름이 전 상간녀인 그 아이의 태명임을 알고 나니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양육비 55만 원 외에는 없는 인연이었기에 아의 상처를 줄이고자 법 자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부정적인 답변에도 법 사례를 공부하며 나 홀로 소송에 도전했고 결국 저의 성과 제가 키우기를 뜻하는 방향의 예쁜 이름을 아이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위해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동서문학상에서 수많이 사람들이 받는 특별상이었지만 저에게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동기가 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4년 안에 저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10가지의 도전 중 마무리를 한 일은 2-3가지이지만 나를 사랑하면서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자고 있던 내 안의 나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나답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별을 겪으면서 제일 크게 달라진 것은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생각했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태에도 감사하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 이별이 없고  그 전처럼 살았다면 매일 전쟁과 같은 삶을 신세한탄만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아이가 예쁜 줄도 모르고 우울해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오늘을 이렇게 열심히 살기에 앞으로의 내가 너무 궁금합니다. 1년 뒤, 3년 뒤,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내 마음속 친구와 같이 대화하며 오늘을 걷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나를 사랑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