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빛 Oct 29. 2021

8. 사랑과 가스라이팅

사랑을 약점 삼아서 파고드는 속삭임



그녀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지게 된 말 중 하나가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대. 어떤 일을 할 때 꾸준히 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성공가가 된다는 거야.”라고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말한 부분이었어. 하지만 그는 그 만 시간을 꾸준히가 아니라 세월의 흐름으로 그 부분을 대신하게 되었지. 그리고 사랑에 지칠 때면 “우리는 참 잘 만난 것 같아.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꿈을 응원해주잖아.”라고 말해주었대. 그녀가 꿈꾸는 삶의 모습에 그가 적합하다는 이상적인 모습을 자꾸 심어주었어. 하지만 그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지. 그리고 처음에는 그녀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인 것처럼 띄워주다 그녀가 그를 의지하자 그는 문제가 있을 때 꼭 그녀 탓을 했어. “네가 나에게 해주지 않으니까..”, “네가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그에게 길들여졌어.



 이혼의 과정에서 그가 저를 당황시킨 말은 “내가 너보다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지만 처럼 나를 사랑하는 여자는 만날 수 없어.”였습니다. 그는 제가 교사(안정적인 직업)라서 만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항상 저의 직업을 외부로 노출시켰습니다. 그의 후배가 제가 있는 자리에서 “나도 형처럼 교사 아내 만나고 싶다.”라고 하면서 당시 교직이수를 했던 여자 친구를 임용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교사로서의 장점 이야기를 많이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 후배가 초등학교 교사를 만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장 친한 후배가 저에게 대놓고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제가 없는 자리에서 그들이 나누었을 말들이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는 가짜 이름, 가짜 번호로 이중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여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못생긴 심리상담가와도 대화를 많이 나눠보았는데 가짜 계정으로 성과 관련된 경험을 올리는 그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답니다.(그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믿을 수 없어서 그가 한 일들을 물어보면 그는 제가 물어보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술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외도를 하면서 내가 밖에 나가도 충분히 좋은 직업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사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꾸며낸 모습을 보여주고 말이죠. 하지만 꼭 보증수표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는지 “나를 사랑하는 여자”라는 타이틀은 꼭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 즉 나는 그를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계속 저에게 주입했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가짜 휴대폰 속에 수많은 성관계 영상과 그 관계 후 여자들에게 받은 후기, 그 경험을 후배와 통화 내용, 그 당시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온 후기 등을 하나하나 보고 들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하려고 연애할 때부터 이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저를 속이고 만난 사실을 추궁하니 결혼을 하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리고 저는 해 주지 않는 것을 해주었다, 네가 엄마와 싸우는 것이 싫었다 등 온갖 핑계를 대고 그 엄청난 잘못을 저를 향하게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을 당하고도 그 비난의 화살을 맞으니 또다시 제가 그를 잡는 도돌이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는데 그 화살을 돌릴 수가 없어서 제가 아는 유일한 상간녀인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성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을 거부하자 “네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다른 여자랑 밥을 먹지는 않잖아, 너는 특별해.” 등 ‘그 아이’는 다른 이성을 만나지 못하게 막으면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또 유부남인 사실을 들키게 되자 똑같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 나머지 마음의 짐은 '그 아이'에게 돌려버렸습니다.


 저는 상담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그에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신고하고자 경찰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했던 그 어떤 행위도 법의 망을 피해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의 망이 매우 좁고 법을 조금만 알면 범죄를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선불 휴대폰을 만들어 계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계정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휴대폰 번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데이트 매칭 앱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성 관련 계정이 인기를 얻으니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DM을 직접 보내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성적인 게시물을 올릴 때도 얼굴을 빼고 올렸기에 신상이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가명을 사용했지만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기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여자들에게 상간녀 소송을 건다고 하여도 그들은 그가 유부남인지 몰랐기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또 ‘그 아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는 만 16세를 막 넘겼을 때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된 '그 아이'도 자기 의지로 움직였기에 신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숨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을 찾아다니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스토킹 법이 강화되기 이전에 했던 행동이라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증거를 삭제했고 설령 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성관계 영상도 동의를 받았기에 처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심리적 길들이기였습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혹은 그루밍이 범죄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법망이 매우 좁고 이것을 법적으로 증명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많습니다.


연애 오답노트  
1. 가스라이팅, 그루밍은 내가 약할 때 그 약점을 온전히 파고든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파악하기)
2. 대화 후 꼭 마지막이 내 잘못으로 간다면 그 대화를 복기해보자.
3. 이 관계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꼭 전문가를 찾아가자.
4. 주변에 가스라이팅, 그루밍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비난 대신 그 사람 대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100% 내 잘못만 있는 상황은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향한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스라이팅은 여러 상황을 통해 한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입니다. 심리와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가스라이터의 말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그루밍(Gromming:길들이기)이라고 지칭합니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저는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마술사라는 직업 때문에 외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적인 수준이 맞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지금까지도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강하셨기에 저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집에서 금기시하고 장점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번의 시험 불합격에 자존감이 있는 대로 낮아졌을 때 그는 계속 제 옆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저에게 계속 강조했습니다. “제일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사람, 임용에 붙어 교사가 되어도 나를 버리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 없다, 우리는 행복한 연인이다.” 등 저에게 이별을 암시하는 단어나 생각은 절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툼이 와도 이 말 때문에 저는 이별이 ‘그를 버리는 행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가 나를 이렇게 도와주었는데 버리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군 생활을 뒷바라지했습니다. 저는 그 부대에서 가장 유명한 곰신이었습니다. 외출을 받기 위해 담배 심부름, 도시락 심부름까지 하며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답장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했지만 매일매일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군대 생활을 기다렸다고 해서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라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달랐습니다. 자신이 한 헌신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제 임용 합격의 일등 공신은 제 동생입니다. 제가 마지막 시험을 붙기 전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로 힘들어할 때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고 퇴근 후에 알바를 하면서 저를 지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등 공신의 자리를 주장하며 그를 버리면 제가 못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와 헤어짐의 순간에 제가 항상 그를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그에게 있음에도 이 생각을 깨지 못합니다. 패턴은 이렇습니다. 저에게 잔다고 거짓말을 하고 밤에 여자인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친구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진에서 그 친구를 보고 이게 언제냐고 물어보면 “네가 싫어하니까 싸울까 봐 거짓말을 했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여자인 친구를 질투해서 거짓말을 하게 만든 사람이 됩니다.  외도 후에 들어왔을 때 낌새가 이상하니 의심을 하게 됩니다. “너는 왜 아무것도 없는데(걸리지 않았는데) 나를 의심하냐.”라고 의붓증을 앓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분명 그 뒷말은 본인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끔 말을 합니다. 반복적으로. 교묘하게. 그리고 불안이 그의 휴대폰을 보게 하고 그를 감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집니다. “나는 그 없이 못 사는 사람.” 혹은 “그보다 못한 사람”.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외부에 보인 그의 이미지를 정당화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좋은 연인인지, 남편인지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저를 깍아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사나."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알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화살이 피해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 본인이 다시 화살을 맞습니다. 보통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드는데 당하지 않으면 정말 이것이 얼마나 교묘히 내 정신을 파고드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힘들 때 처음에 잘 들어주면 그 사람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고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지거나 저처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 고립감은 더욱더 가스라이터에게 매달리게 만듭니다.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조차 저의 속사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고립감이 극에 달하면 가스라이터를 절대 놓을 수 없습니다. 외도, 폭력, 착취 등 그 어떤 것도 가능해집니다.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사랑으로 무장하기에 “다른 사람들도 그래. 네가 유별난 거야,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의심하지 마” 수많은 말에 쌓여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을 퇴보시키고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끌어주고 함께 걸어주는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나눠주는 것이 제일 좋은 치료법일지 모릅니다. 가스라이터보다 더 생각하고 더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면 고립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혹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혹은 나를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꼭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신에게 향한 공격성을 멈춰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7. 이별 후 나를 사랑하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