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출장 가신데.”
아버지가 현관으로 가서, 나는 안방에다 대고 소리쳤다.
“오늘 따라 웬 호들갑이니?”
엄마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이불을 끌어올렸다.
“아빠가 직장을 옮기고, 첫 번째로 출장 가시는 거 아니에요.”
“엄마, 더 자게 놔둬라.”
아버지는 내가 들었던 가방을 빼앗아 들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가방이 무겁네요, 아빠?”
“좀 오래 있을 거니까.”
가방은 배가 불룩하고 제법 무거웠다.
나는 아버지 뒷모습에 끌려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바람이 차다. 어서 들어가라.”
아버지는 내 걱정을 먼저 했다.
나는 요즘 들어 아버지 걱정이 더 되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라는 것을 하던 날,
그 날 저녁때가 아직도 생생해서 머릿속에 그 그림이 떠오르곤 한다.
5060은 옛 이야기고 4‧5정 이야기가 돌 무렵,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젖어서 집에 들어왔다.
팽팽하던 아버지 눈길에 힘이 빠졌고,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런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는 아저씨들 부축을 받아가며,
밤 12시가 넘어 집에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버지 생각과는 상관없이 명예 퇴직을 한 것이다.
“여보, 미안해.”
“얘들아, 미안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푸푸우…….”
하고 숨을 몰아쉬면서 연실 식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버지 말을 듣는 엄마 눈길이 곱지가 않아
가슴이 더 쓰렸다.
아마도 그 때 내가 엄마라면,
‘당신, 그 동안 수고 많았어요.
당신이 우리 집안을 이렇게 이끌었잖아요.
이제 아무 걱정 말고 좀 쉬며 생각해 보세요.’
하고 말했을 것이다.
“거, 봐요?
그저 회사일밖에 모르더니. 이제
어떡할 거예요!”
찢어지는 듯한 엄마 목소리가
내 가슴을 베어 냈다.
아버지가 아침을 먹는지,
출근을 하는지 마는지.
낮에도 부족해서 밤늦도록 동창회다, 모임이다,
헬스다, 실컷 나돌아다니다가 늦잠 자는 엄마.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정말이지 난 엄마 닮을까봐 걱정이다.
“아빠, 걱정 마세요.
동생들과 열심히 공부할 게요.”
“그래, 그래. 고맙구나.”
아버지는 큰오빠 말에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큰오빠가 퍽 고마웠다.
엄마 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으면 창피하니까 집에 있지 말아요.
전화도 받지 말고요.”
엄마 말 때문인지,
아버지는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해 뜨면 나가고 해 지면 돌아왔다.
매일 어디를 다녀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즐기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엄마는 노는 아버지가 못 마땅한지,
아버지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는 취직했다며
등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출근하는 아버지 뒷모습은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고
웬지 허전해 보였다.
“아버지.”
출장 가는 아버지를 드리려
얼마 전부터 마련한 3만 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
“아빠 돈 있어.”
아버지는 지갑을 꺼내 보이며
내 손을 꼭 잡고, 돈을 도로 주었다.
아버지 손이 차갑고 꺼칠했다.
“이번 출장은 좀 오래 걸릴 거다.
엄마 말 잘 듣고, 오빠들 말도 잘 들어라.
아빠가 없으면
큰오빠가 아빠나 마찬가지야.”
“어디로 가는데요?”
“회사에서 연락 받는 대로 움직여야 하기에
딱히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아빠, 전화 할 거죠?”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참, 아빠 핸드폰 네가 써라.”
아버지는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전 괜찮아요. 연락 받는 대로 움직이신다면요.”
“회사에 결과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단다.
보고는 지사에 가서 하니까.
그리고 이젠 내게 올 전화도 없다.
전화 요금은 걱정 말고 써라.”
“아빠, 정말 필요 없어요.”
나는 꼭 갖고 싶었던
핸드폰이었지만 받지 않았다.
“필요 없다니? 내가 거는
전화 안 받을 거야?”
아버지 말에
나는 할 수없이 핸드폰을 받았다.
“어서 들어가라.”
아버지는 그렇게 출장을 갔다.
‘아빠가 일하러 출장을 가셨는데,
오늘 마음은 왜 이렇게 저릴까…….’
3주가 지났는데도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없다.
“엄마, 전화 없었어?”
“없었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하면서도 궁금증에 학교에서
다녀오기만 하면 물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전에 다니던 직장보다는 적지만,
돈을 보냈다. 그러니 아빠 걱정 말거라.”
엄마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잘 있는지 보다
돈을 보낸 것에 더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빠한테서 언제 핸드폰이 걸려올지 몰라.’
나는 이런 생각에 핸드폰을
내 몸 일부분처럼 잊지 않고 잘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간간이 울리는 핸드폰을 받으면
아버지를 찾는 알 수 없는 목소리일 뿐
아버지 목소리는 없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지
엄마가 집에 있었다.
그런데 엄마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어찌 저기압이었다.
잘못했다가는 불똥이 튈 것 같아
잠자코 내 방으로 들어가 바깥 동정을 살폈다.
엄마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전화 통화 내용을 들으려고.
“글쎄, 이 화상이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노숙자가 뭐야, 노숙자가?
그것도 아주 멀리 떨어진 데면 몰라도…….”
“을지로 역이란다.”
‘뭐라구? 아빠가?’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열어 놓았던 방문을 꼭 닫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아버지가 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저어……. 자람이에요.”
“…….”
“아빠가…….”
아버지가 노숙자가 되었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눈물이 그 말을 막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람아, 아버지가 어떻다구?”
나는 겨우 아버지 이야기를
아버지 고등학교 동창인 아저씨에게 했다.
아저씨와 만나 을지로 역에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에게는 비밀에 부치기로 하고.
‘노숙자 생활을 하며 어떻게 돈을 부치셨을까?
식사를 제대로 하시나?
날씨가 추운데…….’
나는 별걱정이 다 들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 해도
나쁜 생각이 자꾸 막았다.
을지로 역이 간단한 줄 알았는데,
을지로 입구 역,
을지로 2가 역,
을지로 3가 역,
을지로 5가 역.
을지로 역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시청 앞에서 을지로,
그러니까 2호선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보도로 들어섰는데
지린내 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지하보도 벽 쪽에 상자를 뜯어
깔고 누워 있는 사람,
상자로 울타리를 치고 누어 있는 사람,
또 신문지를 겹겹이 깔고 누워 있는 사람,
둘 셋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
돌아앉아 혼자 빵을 먹는 사람.
노숙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 노숙자들이 모두 아버지처럼 보이려했다.
“앗!”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앞서 가고 있었다.
후줄근한 옷에 비닐봉지를 든 것 외는
뒷모습이 분명 아버지였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걷는 아저씨 옷소매를 잡고,
“아저씨!”
하고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가리켰다.
그 사람을 본 아저씨 눈이 나와 마주쳤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었다.
아버지를 부르지 말라는 신호였다.
아저씨는 그 사람 뒤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나도 몇 걸음 뒤에서 아저씨 뒤를 따랐다.
아버지 같은 그 사람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화장실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가 들어가려 하자, 아저씨는 막았다.
“정말 아버지라면 놀라게 해야지. 기다리자꾸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람이
아저씨를 흘끗 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 사람 손에는 달랑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화장실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 같은 그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 봐야겠다.”
아저씨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없는데?”
“소변이 아닌 모양이죠.”
“아니다. 지금 대변보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비슷한 사람인 모양이었나 보구나.”
울렁이던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을지로 지하보도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
찌든 잠바를 입은 아저씨,
얼굴이 꺼칠한 아저씨.
이런 아저씨들 가운데 더러는
말끔한 아저씨도 있었다.
말끔한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얼굴이 하얗고 호리호리한 사람은
모두 아버지처럼 보여서 또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청 앞에서 을지로 지하보도가
끝날 때까지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아버지는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 아버지가 노숙자가 되었겠냐?”
아저씨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아버지가 지하보도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 같아 불안했다.
“아저씨, 되짚어 한번 더 가 봐요, 네?”
“녀석, 제 아버지 자식 아니랄까 봐.”
나는 아저씨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다시 시청 앞까지 왔다.
아버지는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잘못 본 모양이다.
여태껏 얘기했지만, 네 아버지는 실력이 있어.
그리고 성실한 사람이니 걱정 말거라.”
아저씨는 집 근처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위로했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얼굴에 댔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곧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