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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May 21. 2018

하늘

청년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사나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날이 아닌데도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자주 보니?”

청년은 아주 부드러워 엄마 같은 눈길을 내게 주고 물었다. 

“…….”

나는 대답 대신 청년에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자주 보는 사람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지.”

“......”


나는 청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맞장구를 쳐주지 못했다.

“바위섬은 하늘이 지켜 주기에 덜 외로울 거야. 

우리 아버지는 어느 바위섬에 계실까? 

아냐, 아버지는 바위섬이 되셨는지도 몰라. 

그래서 바위섬이 외롭다고 내 동생을 부르는 거야.”

사나이의 중얼거림 속에는 짙은 눈물이 배어 나왔다.

“동생이 하나예요?”

“그래. 날 몹시 기다릴 거야.”

“전화를 해 주시죠?”


“너무 늦었어. 우린 전화가 없어. 

해서 급할 땐 안집 걸 빌려 쓰지. 

그런데 안집 아저씨가 새벽같이 시장에 나가시니, 

별것 아닌 것 같고 잠을 깨우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거라뇨? 사랑하는 동생이 기다리는데요.”

“나한테나 사랑스럽고 귀중한 동생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여지지가 않는 모양이야. 

왜, 사람이 많은데 가면 사람이 귀찮지? 

그런 귀찮은 사람처럼 생각을 안 해 주면 정말 고맙겠어.”

“집이 어디세요?”


“성남시 끄트머리. 글쎄, 

이 끄트머리가 경기도에서는 위쪽이라고 하지.”

뭔지 모르겠지만, 청년 마음이 내게로 옮겨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는데……. 

게다가 청년 동생은 아픈데도 병원비가 없어서 

무척 걱정이 되겠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청년이 말했다.


“아버지 몸살이 나셔서, 네가 장사를 대신 한 거로구나.”

“네. 하지만 다른 때도 공부하는 

틈틈이 아버지를 도와요. 아버지께서는 싫어하시지만요.”

나는 청년에게서 헤어나와 나를 찾으며 대답했다.

“네가 싫어하지 않고 아버지가 싫어하셔?”

“네.”

“그렇다면 아버지가 싫어하시는 게 아니라, 

네가 싫어하는 거야. 

네가 참마음으로 싫어하지 않으면, 

아버지도 싫어하지 않으실 거야.”


“처음엔 길거리에서 장사하시는 게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네가 아버지를 잘 위로해 드려라. 

아버지 마음은 네가 싫어할 때에서 

아직도 옮기지 못하신 모양이다. 

그 마음을 옮기게 하려면 

네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어떤 노력요?”


“지금 장사하는 거 말야. 

아버지 일하시는데, 

네가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그럼요.”

“그 생각을 바꿔.”

“바꾸라고요?”

고개를 갸우뚱한 내가 물었다.


“그래. 네가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을 바꾸는 거야. 

네 일에 아버지가 돕고 계시다는 걸로 말이야. 

그러면 아버지 생각이 옮겨질지도 몰라.”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도 형 같은 형이 있으면 참 좋겠다.”

“내 동생도 너만하니까.”

“정말이에요?”

“그럼.”

“그럼,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우리 <바위섬> 노래 부를까?”

청년은 하모니카를 다시 들고 입에 댔다. 

나는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여름 속에 가을이 숨어 있는 것일까?


선듯선듯한 바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소풍가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흥얼거리며 배운 <바위섬>, 

그런데 노래가 싣고 있는 뜻을 생각하면서 부르니, 참 좋았다.

하모니카를 다 불고, 청년은 내 등을 턱 치며 말했다.

“좋아, 넌 내 동생이야.”

“정말예요?”

“좋아, <바위섬>을 좋아하면 

내 동생 자격이 있어. 


그런데 형이 신통치 못해 어떻하지? 

형이 더 열심히 공부할게.”

“동생이 못나서 어떡하죠?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

“그런데 형, 동생이 아파서 어떡하지?”

“어떡하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잖아. 

참, 이름이 뭐지?”

“동섭, 김동섭이에요.”


“난, 김수길이야.”

“형도 김가야? 

야, 우린 진짜 형제다!”

“성이 뭐 그렇게 중요하니? 

우린 같은 민족인데. 

중요한 건 우리가 형제라는 마음이야.”

“그래도 성이 같으면 더 좋죠. 뭐.”


“동섭아, 내가 정말로 그 집에 

물건 훔치러 간 거 같니?”

“형이 그랬잖아?”

“그랬지. 그런데 네가 보기에 말야?”

“형은 그런 사람 같지가 않아. 내가 보기에는…….”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도둑놈처럼 보이고?”

청년은 싱긋이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비친 청년 얼굴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청년은 웃고 있지만, 

그 뒤에는 웃음의 앙금이 져 있다.

“남들이 뭐 중요해요? 내 마음이 중요하죠.”

“어쭈, 제법 어른스런 말을 하는데. 

사실 그 집은 우리 돈을 갖다가 부자가 된 집이야. 

우리 엄마도 그 집 주인 때문에 나가셨는지도 몰라. 

난, 어저께부터 그 집 주인에게 돈을 꾸러 갔었지. 

생각다 못해 겨우 낸 용기였어. 


그런데 주인은 없고 부인이 나왔어. 

그러고는 다짜고짜 

우리 아버지 욕을 해대며 내쫓는 거야. 

부인이랑 말이 안 되어 

주인을 만나러 밤에 갔던 거야. 

그런데 문을 열어 주지 않잖아. 

그래서 대문을 발로 몇 번 걷어찼지. 

그러고는 어쩔까 하면서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방범대원 둘이 오는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도망쳤지. 

잡혀 봐. 동생은 어떻게 되겠어?”


“진작 그 말하지요?”

“누가 내 말을 듣고 믿어 주겠니? 

처음엔 너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걸?”

“…….”

“지금은 나를 조금이라도 아니까, 

들어주고 믿어 주는 거야. 

방범대원들에게 쫓겼던 내 말을 

어느 누가 들어주겠어? 

또 누가 믿어 주겠느냔 말야?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믿어 주는 사람도 없어, 

내 동생 병원비가 없는 거야. 

믿는 건 둘째 치고, 난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동생밖에 없어. 

그래서 내게 동생이 소중한 거야.”


청년은 아랫동네 불빛을 넋 놓고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휘황찬란한 불빛이 

네 어머니와 우리 엄마를 빼앗아 갔는지도 몰라. 

저 하늘에 별도 빼앗아 가고 말야.”

청년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입 속에서 말을 꺼냈다.

“동섭아, 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다. 어이 들어가 봐.”

“형은?”

“난, 내가 알아서 할게.”


“형이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그런 억지가 어디 있니? 

네가 진짜 날 형으로 생각한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해. 

소중한 사람의 말을 

귀중하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

“그거 참 좋은 말이다!”


나도 아니고, 청년 목소리도 아닌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다가왔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청년, 어서 우리 집으로 가지.”

“형, 어서 가요.”

나는 청년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지. 소중한 동생이라고 

생각이 되면 어서 가야지. 

자네 얘기를 훔쳐 들어서 미안하네. 

동섭이를 찾으러 왔다가 그만……. 

내 아까는 미안했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요란한 포장만 보았던 게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생각을 안 했던 게야.”

“아저씨, 죄송합니다.”


“동섭아, 어떠냐? 너만 좋다면 

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저금한 것, 

형에게 주는 게.”

“아 아닙니다. 

저를 오늘 처음 보시지 않았습니까…….”

“처음 보긴, 

자넨 우리 동섭이 형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나이가 뒷머리를 긁었다.


“그럼, 자네는 내 아들도 되고. 

고등학교에 가려면 삼 년 이상 남아 있으니까, 

그 때까지 갚으면 돼. 

그러니 어서 우리 집으로 가세.”

“아닙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렵니다. 

제 동생도 돌봐야 하고.”

“그럼, 동섭아. 너 집에 가서 그거 가져오너라.”

“네, 아버지.”


나는 잽싸게 집에 가서 

내 앞으로 된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와, 

“아버지, 이것.”

하고 아버지에게 주었다.

“자, 받게. 자네 동생은 꼭 나올 게야. 

이 통장 안에 돈은 우리 둘의 희망이야.”

“고- 고맙습니다…….”


청년의 뜨거운 눈물이 

통장과 도장을 든 아버지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통장과 도장이 어릿어릿 보였다.

‘아주 잘 됐어.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눈물이 앞을 가리어, 

흰 배꽃이 바람에 휘날려 

눈보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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