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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Apr 06. 2022

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되는 구석이 없었어요

운동을 시작한 이유

바야흐로 '나 진짜 운동해야 하는데'를 외친 지 약.. 10년이 된 게 올해였다. 고개를 숙이고 공부하는 일이 어려워진 고등학생 때부터 이 말을 혼잣말처럼 해왔다(혹시 모른다 중학생 때부터 종종 몇 번씩 그 말을 했을지도).


이토록 내 인생 '운동' 섹션은 빈칸으로 남아있었다. 유년시절 돌고래수영으로 다진 체력은 고갈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운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라고 표현하기도 난감한 것이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가만히 있으면 됐다. 그렇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가마니..


그러던 어느 날.

작년 여름이었다. 나의 소중한 직장생활을 증오로 뒤흔든 상사의 등장이라니.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무례하고, 논리가 통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화로 협의하는 것이 불가하고, 목소리를 자주 높이며, 주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보단 협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드는(예시: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를 울릴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를 자를 것이다' (???)) 거기에 자신의 감정과 불안을 팀원들에게 정말 마음껏 화풀이 하기까지. 화려한 조합의 인간이었다. 장담하건대 그를 드라마 캐릭터로 만든다면 누군가는 그 드라마를 보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렇게 악질인 캐릭터는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지지!"


그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과 조우하고 만 것이다. 마음이 미움으로 조금씩 얼룩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미워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나에 대한 미움이 함께 온다. 그 사람이 싫은데, 그 사람을 싫어하고 있는 나는 더 싫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미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흔들려버리는 내가 너무나 미성숙하고 못나서. 그런 나를 보며 그를 더 미워했다.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또 더 싫어했다. 미워하는 마음에는 부피가 있다. 미움이 가지를 뻗칠수록 다른 곳에 내어줄 마음의 공간은 적어진다. 사람이 쫌팽이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미움으로 얼룩진 마음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 일상이 서서히 내 손에서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닌 무언가에 의해서 인생이 마구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디로 갈지 짐작할 수 없다는 불안감은 무력감을 키웠다. 어떻게든 인생을 손에 쥐고 싶었다. 다는 아니더라도 삶의 어느 한 구석만은 내 손으로 꽉 쥐고 싶었다. 누구도 건들 수 없이 나만 장악하고 있는 삶의 한 구석이 필요했다.


미워하는 마음을 쏟아버릴 곳이 필요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내 마음이 뿜어내는 안 좋은 열기를 빨리 어딘가에 쏟아내서 내면의 청정함을 되찾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의외로 큰 지원군이 되고 있다. 삶은 내가 계획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때때로 나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을 만나지만 몸은 운동하는 만큼만 변했다. 운동한 다음날에는 정확히 전날 내가 운동한 곳만 아팠다. 몸에 생기는 변화에는 변수가 없었다. 오로지 내가 움직이는 만큼만. 그만큼만.


지금까지 내가 일궈온 것들은 대체로 실체가 없었다. 숫자나 성적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활자에 의존한 것들이다. 되도록이면 시간이 물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낸 시간이 얼마나 단단하게 나를 키웠는지 만져보고 두드려보며 안심하고 싶으니까. 운동은 시간을 근육으로 바꿔준다. 드디어 땀 흘린 시간을 만져보는 경험을 한다. 삶의 어느 한 구석은 내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는 것은 마음에 관한 일기다. 내가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몸을 바꾸기 시작했는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꾸준히 적어보려 한다.


어쩌면 내가 진짜 미워한 것은 상사가 아닌 다른 것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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