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직장생활 장점편 (한줄요약: 진짜 좋아요)
제가 유럽에서 살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 중 한가지는 '직장 생활' 때문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서는 '아, 나는 한국에서 다시 일하기는 글렀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는 저의 가치관과 유럽에서의 직장 문화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럽 회사의 장점은 넉넉한 휴가 일수입니다. 한국에서 1년차 때 연차를 7.5일 받았는데요, 스페인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가 23일입니다. 공휴일까지 합하면 1년에 40일 정도를 쉬는 셈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무제한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실제로 1년에 공휴일과 sick day를 제외하고 40일정도의 휴가를 쓰고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쉬는 것'을 '일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도 일년에 한 달정도는 한국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했다면 여행을 가는 것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픈 것도 회사의 눈치를 봐야했는데 여기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는 아빠들이 정말 많은데 전부 아침에 아이들 케어하느라 조금 늦게 업무를 시작하거나 아이를 픽업하러 3-4시쯤 업무를 종료하는 일도 흔합니다. 회사의 몇몇 분들은 여행하며 방콕에서 한달, 영국에서 한달, 스페인에서 한달씩 근무하기도 합니다. 입사 첫 해에 저는 30일이 조금 안되는 휴가를 썼는데, 내년에는 휴가를 더 썼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내 삶에 여유가 생기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보니 근로자들이 자연스럽게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테크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평균 근속 년수가 꽤 긴 편이고, 퇴사자도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수평적인 문화, 자유로운 피드백 입니다. 스페인에서 유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이 자꾸 손을 들고 교수님의 말을 끊고 질문도 하고, 자기 생각도 얘기하는 겁니다. '저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사실 수업에서 그렇게 질문하는 것을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수업 평가 기준에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나, 동료들 작업에 얼마나 건설적인 피드백을 했나' 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를 조직에 맞추기 위해서 노오력을 해왔던 지난날들이 생각 났습니다. 내 의견은 최대한 감추기 위해 노력해왔던 터라 한순간에 갑자기 질문을 많이 하려니 멀미가 날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질문도 잘 하고 보스와도 "잘 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함께 일하는 보스가 '자기와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끝까지 싸워달라' 고 말합니다. (물론 절대 무례하게 싸우지 않고, 문서로 정리해 4단계에 걸처 매니저에게 피드백을 전달합니다.) 6개월에 한 번씩 성과를 평가하는 피드백 미팅때는 저도 피드백을 받지만 저도 보스에게 피드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매니지먼트 팀이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물론 건설적인) 피드백을 전달하고 또 제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는지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런 점들이 저의 개인적인 성향과 잘 맞아서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런 이성적인 장점들 말고도 '회사가 좋다' 라고 느낀 순간이 또 있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입사하자마자 응급실에 갈 일이 있어서 보스에게 '입사하자마자 죄송하다'는 메세지를 남겼더니 엄청 의아해 하면서 '입사한지 첫날이어도 아프면 아픈거'라면서 원하는 만큼 쉬고 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뭐랄까요, 휴가가 많은 것도 자유로운 문화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때 사정을 회사에서 나누고 서로 짐을 짊어져주고요.
더 신기한 일은 회사가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일하면 회사가 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