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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셀로나 10시간전

전기 밥솥, 그게 뭐라고.

해외에 살다보면 별거 아닌걸로 눈물이 난다. 

우리집에 쿠첸 밥솥이 있다.


스페인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이 처음으로 스페인에 방문하시던 때였다.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가 손녀딸 결혼한다고 쌈짓돈을 다 모아가지고 부모님에게 30만원을 주시면서 필요한거 사주라고 하셨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제대로 된 밥솥을 사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아마존에서도 판다.) 엄마는 해외에서 밥 한끼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하는 마음과 앞으로 오랜 해외살이를 해야하는 딸에게 뭐라도 하나 제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 무거운 밥솥을 사서 비행기에 이고지고 스페인까지 들고왔다. 


처음 밥솥을 뜯고 우리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밥을 해먹는데, 밥 맛이 달랐다. 같은 쌀을 쓰고 같은 물을 썼는데도 밥 맛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남편도 놀랐다. 귀중하게 들고 온거라 애지중지 하며 사용하는 중이었다. 다들 아시는것 처럼 내솥에 고무패킹(?) 같은것이 달려있어 고온세척하다 혹여나 망가질까 싶어 식기 세척기에는 절대로 넣지도 않고 남편에게도 절대 넣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내솥을 식세기에 그냥 넣어버렸다. 식기 세척기 안의 내솥을 발견하는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남편은 절대 나쁜 의도로 한 일이 아닌걸 알면서도 이게 얼마나 나한테 중요한지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해서 '이게 어떤 밥솥인데!' 하고 핀잔을 주며 울었다. 


이 집에서 한국어로 말걸어 주는건 밥솥뿐인데. 스페인 주방 한가운데서 딱 자리잡은 밥솥이 “나 한국인이야”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나 같고, 또 가족들이 생각나고. 그래서 괜히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엄청 사과하고, 식세기에서 바로 빼서 내솥도 무사했다. 


해외에 살다보니 별거 아닌 일에 눈물이 자꾸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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