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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셀로나 Jul 23. 2024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스페인 살이

종종 스페인에 살기 괴로운 나는 어쩔수 없는 한국인

종종 스페인에 사는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스페인 너는 정말 "Spain without S" 라고. 

어제는 Spain에서 S를 제외한 pain, 즉 고통스러운 날이었고 스페인에 살기로 결심한걸 후회하던 하루이자 지극히 평범한 스페인의 일상이었다.


스페인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길에서 축제가 열린다. 여행을 할때야 길에서 만나는 축제가 얼마나 반갑고 신기하겠냐마는 로컬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소음파티에 불과하다. 할머니들만 사는 우리 동네에도 종종 축제가 열리고, 지난 주말에 열렸던 축제는 일년 중 가장 큰 파티 Fiesta Mayor가 열리는 날이었다. 작년에 처음 이사와서 겪고 아 정말 끔찍하다 생각했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 심했다. 


가장 주된 축제는 불꽃놀이와 콘서트 (이자 클럽)인데, 삐용삐용 탕탕 소음이 엄청 크게 나는 불꽃을 길에서 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2차는 드럼롤인데, 수십명의 사람이 드럼을 메고 몇 시간동안 도시를 행진한다. 여기까지는 사실 애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밤 11시부터 타운홀 앞 (이라고 해봤자 작은 동사무소) 새벽 1시까지 콘서트를 하고, 우리 집 앞에 있는 광장에서는 클럽을 연다. 금요일 밤에 새벽 4시까지 미친듯이 파티를 하고 고함을 치길래 그래, 스페인이 다 그렇지 뭐 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올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 아니었다. 마치 이태원의 EDM 클럽 한가운데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기분이었다. 


못 믿을 것 같아서 영상을 첨부해본다.


금요일에 너무 고통 받았지만, 토요일에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또 진정한 로컬이 되어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래 즐겨보기라도 하자 싶어서 밖에 나가서 음악도 들어보고 콘서트도 즐기다 새벽 두시에 돌아왔다. 나눠준 행사 팜플렛에는 새벽 세시 반이면 행사가 끝난다고 공지되어 있어서 조금만 버텨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 4시가 되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도 껴보고 실리콘 귀마개도 껴봤지만 우퍼 소리에가 귀마개를 뚫고 집안 전체가 울렸다. 토요일 새벽 4시 15분에 찍은 영상이다. 



결국 우리는 경찰에 전화를 했다. 행사 팜플렛에 공지된 세시반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경찰은 행사 시간이 새벽 다섯시까지 허가가 나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새벽 다섯시는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앞으로 한시간은 더 기다려야 행사가 끝나고 이미 어제도 잠을 한숨도 못잔터였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아파트 단지 안에 주차장 공간에 클럽을 열고, 그 클럽 오픈 시간을 새벽 다섯시까지 허가를 내준 것이다. 집 앞에서는 사람들이 전부 대마를 피고 맥주를 뿌리고 소리를 질렀다. 층간 소음은 애교였다. 괜히 남편에게 온갖 짜증을 내면서 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땡깡을 부렸다. 어떻게 이렇게 시민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 있냐고 화를 냈다. 하지만 결국 남편의 잘못이 아니고.. 남편도 고통받고 있는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새벽 다섯시가 되었다. 소음은 그치지 않아 다시 경찰에 전화했다. 경찰은 그제서야 알겠다고 지금 상관에게 얘기해 행사를 중단시키겠다고 했다. 새벽 다섯시 십오분쯤 되어서야 음악이 멈췄다. 그제서야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이미 잠은 깬지 오래고 거의 밤을 꼴딱 새다시피 했다. 


다음날이 되어 길에서 이웃들을 만났는데 만나는 사람 전부 이 상황에 화가 나있었다. 나야 이사온지 2년 쯤 되었지만 이 동네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매년 이 페스티벌로 고통받고 있었고 타운 홀에 여러번 신고하고 항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바뀌는 것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에 휴가를 (강제로) 떠나거나 다른 가족들의 집으로 피신을 해야했다고 한다. 불꽃 축제를 거리에서 하다보니 1층에 사는 집과 상점들의 유리에 전부 검은 폭죽 자국이 남았고, 보수를 하는 상점들 주인의 불평소리들이 들려왔다. 강아지나 아이를 키우는 집들에서 유독 고통받는다고 했다.


한국이었다면 나도 항의할 수 있는 정식 절차를 알아보고 민원도 넣었겠지만 스페인에서, 특히나 까딸란 언어를 쓰는 우리 동네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었다. 주민들이 이렇게 항의를 하지만 듣지도 않는 동네에서 결국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 이민자의 말을 누가 들어주려나. 아무리 똑쟁이처럼 살아보려고 해도 나는 결국 이방인인 것을.


그리고 다음날, 점심을 먹기위해 바르셀로나 시내에 나가보니 수많은 외국인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과 바닷가에 비치는 눈부신 윤슬,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야자수와 행복한 웃음들이 바르셀로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제서야 나는 바르셀로나 로컬들이 관광객들때문에 왜이렇게 화가 났는지, 시위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관광이 주 산업인 나라인 만큼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달, 어쩌면 거의 매주 페스티벌이나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린다. 작은 골목에서도, 큰 도로에서도, 공원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시도때도 없이 열린다. 그 소음의 수준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 근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일 것이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몰리며 치솟는 물가와 렌트비, 축제 이후에 약과 오물로 더럽혀진 동네.. 로컬들은 점점 도시를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청에 얼마나 항의하고, 여러번 문의하고, 절차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을까. 얼마나 수많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까. 그런데도 들어주지 않아 얼마나 화가나고 좌절했을까. 



스페인의 축제는 아름답다. 스페인 사람들의 전통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나도 이해한다. 그래도 적어도 이곳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한다. 혹여나 스페인 여행을 와보고 이곳에서 살고싶다고 생각했던 분들은 잘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소리에 예민하거나 내 삶의 바운더리가 중요한 분들은 스페인은 당신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주말은 스페인을 떠나고 싶었던 여러 날들 중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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