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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셀로나 Jul 24. 2024

스페인의 작은 동네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내 행복은 내가 스스로 찾을거야.

나는 한국에서도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한 두곳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고, 배달음식도 자주 시켜먹고, 친구들과 함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닐 수 있는 곳에서 사는 삶을 좋아했다. 스페인으로 이사온 후에는 나는 바르셀로나 시티 센트로에서 3년을 지냈고, 구석 구석 예쁜 가게들과 맛집, 카페와 바를 찾아다니는 도시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주위에 아시안 마켓도, 한식당도 차고 넘쳐서 한국음식이 엄청나게 그립지도 않았다. 


그러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남편이 원래 살던 작은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이 동네는 바르셀로나에서 멀지는 않지만 동네 로컬들이 사는 작고 오래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고 세련된 카페와 바는 없는, 조금 촌스럽지만 정겹고 다정한 동네다. 배달앱이 들어온지도 얼마 안되었고 스타벅스는 커녕 마음에 드는 카페 하나 찾기 힘든 곳이었다. 그러니 아시안 레스토랑이나 한인마트를 기대할 수도 없는 (적어도 나에게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불만이 많았다. 남편을 위해 내가 사는 나라까지 바꾸고 친구들,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지내는데 이런 시골까지 들어와야 한다고? 하는 불평이 자주 입끝에 머물렀다. 이렇게 우울할때는 떡볶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떡 하나 사려면 지하철을 타고 한인마트까지 왕복 1시간을 움직여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남편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남편에게 '내 희생'만 알아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뭐라도 즐겨보자 싶어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살 때도 외국 친구들을 자주 초청해 한국 음식을 해줬는데, 맛이 있었는지 학교에 소문이 났다. 그래서인지 학교 CEO 분마저 나를 초대해 요리를 해줄 수 있겠냐고 한 적도 있었고,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님도 김밥 만드는걸 배우고 싶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손 맛이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나름 자신감이 붙었는지,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면 해먹기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번 마트에 가서 다양한 식재료들을 사와 이것 저것 요리를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번 개인 인스타 계정에 사진을 올렸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게 니가 만든거라고?"

"헐! 레시피좀 알려줄 수 있어?"


그 이후에 주위의 친한 인플루언서 친구들이 계정을 파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이건 무조건 되는 콘텐츠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렇게 '먹셀로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에 140여개의 레시피를 올렸다. 손칼국수도 해먹고 가스파초와 끄로께타, 김치와 분짜도 직접 해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888명의 팔로워도 생겼다. 그렇게 먹셀로나로 시작한 스레드에 해외 살이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2,700여명의 팔로워도 생겼다. 먹셀로나 계정을 주위의 이웃들에게 공개하고 동네 레스토랑 (나름 이동네에서는 핫플인) 주인분과도 맞팔을 하게 되었다. 내 메뉴를 보고 자기가 영감을 얻는다며 칭찬도 해주셨다. 


먹셀로나를 통해서 친구도 만났다. 요새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는 '윤아르기닌' 인데, 먹셀로나를 몇달간 지켜보다가 나에게 커피 한잔 하자고 먼저 디엠을 보내주었다. 처음에 낯선 사람이 온라인에서 접근하는 것을 의심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이야기도 너무 잘 통하고, 똑같이 스페인 남편과 결혼하고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엄청난 공감대와 위로를 나눌 수 있었다. 먼 타지에서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다니. 먹셀로나 최대의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에 내가 바르셀로나에 계속 살았더라면 이만큼 요리를 할 수 있었을까? 주위에 레스토랑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요리였는데, 내게 오히려 새로운 문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주위에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한국을 알리기도 좋았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절벽 앞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뛰어내려 보니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다는 걸 알았달까. 내게 주어진 상황이 행복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거라는걸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혹시 궁금한 분이 있다면 인스타그램 (mugselona)에 놀러오세요. 스페인 요리도, 한국 음식도 많이 올려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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