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스페인에까지 와서야 알게된 진짜 행복의 의미
사실 우스운 이야기다.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돈 들여 시간들여 스페인까지 찾아와서 정착해놓고 오늘은 행복이 내 주위에 작은 것들로부터 온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보면 '너어는 스페인에 사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지'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스페인에 처음 첫 발을 내딛던 설레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민가방 한 개와 캐리어 두개를 짊어지고 밤 늦게 에어비앤비에 도착했고, 겨울이라 방이 무척 추웠던 방의 온도와 낮은 조도의 조명, 한 달 안에 방을 구해야한다는 불안감과 새로 시작하는 설렘이 한데 뒤섞인 날이었다.
첫 수업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 아이린의 수업을 들었고, 너무 재밌고 신나서 몸서리가 쳐졌다. 날이 갈수록 스피킹이 조금씩 늘었고,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디자인 실력은 쑥쑥 늘었고 내 인생이 앞으로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수업을 하는 강의실에서 지중해 바닷가가 보였고, 길을 걷다보면 가우디 건축물이 툭툭 튀어나왔다. 바르셀로네타 바닷가에 가서 한참을 앉아있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잔뜩 들었다.
나는 정말 행복했지만 동시에 통장 잔고는 뚝뚝 떨어졌다. 월세와 생활비를 위해서 프리랜서 잡을 악착같이 찾아야 했다. 당시에 부모님의 상황도 안좋아지셔서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때때로 자괴감이 들었다. 동시에 다음 달에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그렇게 싫어했던 한국의 직장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 작았던 고정수입이 그리웠다.
처음에 스페인에 왔을 때는 실력만 있으면 금방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찌나 냉혹하던지. 워킹 비자가 없는 외국인 디자이너는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처음 갔던 스타트업에서는 첫 달에 500유로를 월급으로 줬다. 대표는 고작 학생비자를 내어주면서 풀타임으로 일을 시키고, 월급은 학생 비자만큼만 주었다. 비자가 없는 스탭들에게 비자로 협박하고 자기 마음에 안들면 사람들 다 있는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유럽에 오면 이런 회사는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똥통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얼른 탈출하고 싶어서 회사에 지원을 계속 했지만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가고 싶었던 스페인의 대형 스타트업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결국 떨어졌는데, 그 날 아무도 없던 바르셀로네타 바닷가에서 엉엉 울면서 소리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바르셀로네타 바닷가는 내가 불과 1년 반전에 앉아 '행복하다'고 느꼈던 곳이었다. 마음이 지옥같으니 그 예쁜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지긋지긋한 곳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 멀고 아름다운 곳 스페인에 살면서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보면서 결국 모든 문제가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에서도 내 마음이 지옥같다면 즐겁지 않은거고, 모든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는 곳에서도 내 마음이 행복하다면 나는 즐거울 수 있는거였다. 삶의 모든 순간에는 감사할 일과 어려운 일이 항상 함께 존재하고, 나의 삶은 그 순간에 나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 것인지 묻고 있었다.
암흑같은 시간들을 지나면서도 마음을 잘 지키려고 노력해본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을 잘 돌보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불안과 걱정, 염려와 외로움이 마음을 덮쳐버린다. 그럴때면 가만히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생각해본다.
토요일 점심에 하는 외식, 이웃들과 반갑게 나누는 인사와 농담, 친구가 힘들때 나를 기억해주고 하는 전화통화, 엄마랑 통화할때 보이는 강아지의 뒷통수, 남편의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디저트, 오후 햇살을 받으며 하는 산책, 퇴근하고 남편과 하는 비디오 게임, 남편과 떠는 수다, 여행갔다 새로 사온 차를 맛보는 일, 동료들이 건네는 작은 칭찬, 고객들이 디자인에 대해 건네는 좋은 평가, 예쁜 동네로 떠나는 여행, 구석구석 숨겨진 맛집을 발견하는 일.
다 적고나니 행복은 거창한 곳에서 오지 않고 내 일상에, 내 주위에 작게 흩뿌려져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이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한국에 계속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스페인에 왔기 때문에 이걸 알게 된걸까. 한국에서 미리 알았더라면 이 돈과 시간을 쓰지 않고 일상에 감사하며 살았을텐데 하고 피식 웃는다. 어쨌든 한국이든 스페인이든 달나라에 살든 앞으로도 내 인생에 어려운 일은 계속 있을거다. 어찌 되었건, 또 어디에 살든 나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살아보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