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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08. 2021

‘Ausgang’, 출구, 그리고 축출의 시대

[2020.3.11] 구유리의 ‘Ausgang’에 부치는 글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 2020 힙스터들의 성지가 된 을지로. 허나 필자에겐 을지로가 乙(을)의(之)분노(怒)이자, 乙(을)의(之)거리(路)로 보인다. 자본은 마’을’(사람)을 죽이고 그럴듯하게 되살려서(재생) 을에게 다시 팔아먹는다. 이러한 자본의 갑질에 을의 분노가 마침내 비트 되어 거리에 그을려 퍼진다. 절망에 그을린 절명의 비트가 지하로부터 흘러나와 거리를 을린다. 분노의 음악과 비트가 나오는 곳들이 바로 1990년대 생들이 즐겨 찾는 ‘을리들’이다(을리들은 을지로 라이브 클럽(공간)들의 줄임말이다). 때마침 을지로 청계천이 도시재생에 의해 압살된 판이 벌어졌다. -한받 자립음악가, 민중 엔터테이너의 “을지로n을라들on.da” <월간미술> 421호(2020년 2월)


# 1 “압살” 풍경


오랫동안 “압살”되어 온 을지로에서, 2019년 8월 한 달간 조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압살의 중심에 있는 세입자 실태를 설문조사하는 일이었다. 서울시가 연말 안에 마련하기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에 대한 종합 대책을 세우기 위한 세입자 전수조사였다. 나를 포함한 조사원 열댓 명이 해당 구역에서 영업 중인 도소매업, 제조업을 운영하는 세입자를 모두 찾아다니며 조사를 요청했다. 


소규모 점포 사장인 세입자들 대부분은 조사의 주체가 이 재개발을 주도한 서울시고, 이제야 대안을 마련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들은 앞서 진행된 철거 과정을 보면서 이웃 세입자들이 어떤 식으로 내쫓기고 문 닫았는지 학습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설문지 문항은 많았다. 오랫동안 제조 기술자로 일해온 50대와 60대가 대부분이고, 더 고연령자도 포함된 설문 대상자들에게 낯선 용어가 수두룩했다. 현실에서 최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했기에, 각 점포의 매출 규모를 포함해 별로 공개하고 싶지 않을 경영 정보에 대한 문항도 포함됐다. 한국산업용재협회 측에서 조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서 주었지만, 여전히 세입자들 중 몇몇은 조사 자체를 거부했다. 조사원을 경계하는 분들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사장님은 불쑥 ‘이 일로 얼마를 받느냐’고 물었고,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나는 서울시 소속이 아니고, 재개발 과정의 잘못에 대한 직접적 책임도 없었지만, 이들이 쫓겨나는 상황으로 발생한 연구용역 설문조사 일자리를 얻은 사람으로서 모종의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을 안고 있었다. 오래 다닌 직장 퇴사 후 휴식 시간을 갖는 김에 이 조사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한 달 잔고를 아낄 수 있는 나와 달리, 사장님들은 이 조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사실상 더 나아진다는 100%의 보장이 없었다. 한 자리에서 길게는 40년도 넘게 휴일도 없다시피 오로지 노동으로 일궈온 세월은 건물주의 권리 앞에서는 속절없이 단숨에 뿌리 뽑히는 법이었다. 그런 판국에 진행하는 이 의심스러운 조사를 완전히 거부하기도 찜찜했을 거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고 계속 생존을 모색하는 중에는 말이다.


# 2 관이 주도하는 도심 산업 생태계 파괴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된 것은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운상가 등 8개 상가 건물을 헐고 재개발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상가 한 개만 철거한 채로 거의 백지화됐다. 그 이전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청계천 을지로 공구상가 철거와 도심 재개발 사업을 시도했었다. 세입자들을 이주시킬 대안이라고 기존 산업 생태계에서 16km 이상 떨어진 송파구 문정동에 대규모 복합쇼핑몰 가든파이브를 세웠다. 서울주택도시공사가 1조 3천억 원을 들였고, 그곳의 실제 분양가는 서울시가 상인들에게 사전 예고했던 가격의 두 배였다. 결국 2007년 당시 6만여 명이던 청계천 상인 중 1,028명만이 가든파이브에 입주했다. 제조업체는 애초부터 입주가 불가한 경우가 태반이었고, 분양가 때문에 이주를 포기한 업체도 많았다. 


그때 청계천에서 지금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옮긴 세입자들도 꽤 있다. 이후에 박원순 시장이 ‘새로운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면서 세운상가군을 철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은 세운상가만 남겼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근 산업 지구는 그대로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세운지구 일대 산업 생태계가 무너졌다. 청계천에서 세운지구 쪽으로 이주했던 세입자들도 다시 내몰렸다.


# 3 사라지는 도시 제조업, 그리고 초고층 아파트


세운지구 일대는 정치 경제 문화적 이유로 제때 적절한 투자를 받거나 재정비되지 못했다. 건물주들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노후화되고, 화재 위험에도 취약해졌다. 이 구역에서 거미망처럼 촘촘히 연결된 세입자들은 가능한 범위에서 함께 고쳐 쓰고 버티면서 몇십 년간 도시 제조업 생태계를 유지시켰다. 그렇게 기술 장인이 되었다. 오랜 기간 학생, 예술가와 같은 개인의 소량 주문부터 해서 대학, 연구소, 기업 등의 시제품 주문 등이 지속적으로 세운지구로 들어왔고, 저층 건물의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힙지로’가 된 을지로 일대에는 회사원과 젊은이들이 들끓는 새로운 상점들이 들어섰다. 신생이거나 오래된 점포들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곧 철거와 재개발 압박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리모델링이나 환경 개선은 선택지에 없었고, 정치인들과 개발업자들은 이제와 세운지구 일대가 더럽고 낙후되고 심지어 슬럼화 되었다며 철거와 재개발 카드만 들고 나섰다. 거기에 적정한 대책을 갖고 오지도, 세입자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빨리빨리 자기들 목적만 달성하려고 했다. 세입자들은 투쟁과 불안으로 몰렸고, 납기일이 분명한 일들도 쉴 수 없었다. 세운지구 시행을 맡은 민간 건설사는 세입자들을 상대로 수억 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는 물론이고 세입자 영업용 통장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이 적극적인 소송 남발은 세입자들 목을 조이는데 효과적이었다. 세운지구 바로 옆 노가리 골목 일대에서는 중구가 주최한 맥주 축제가 열렸다.


이 모든 상황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법의 힘은 공간을 만든 쪽이 아니라 공간을 소유하는 자와 행정 집행관들에게 있었기에. 70년대부터 축적된 세운지구의 흔적과 문화는 결국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가열차게 몰려오는 재개발의 굉음이 남기는 쓰레기 더미를 남겼고, 힘없는 자들의 생산력은 그 더미 속으로 함께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사장님 한 분은 ‘도둑 철거’를 하는 포클레인이 자기 건물을 부수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올 정도였다. 그는 결국  부랴부랴, 모든 집기를 옮기기 여의치 않은 곳으로 업장을 옮기며, 가져가지 못할 오래된 것들을 차마 팔지 못하고 필요한 다른 이에게 그냥 줘 버렸다. 그 기술자는 한국인 최초 우주인 김소연 씨의 ‘등고선 측정기’를 제작한 사람이다. 중구청이 2016년부터 운영한 골목길 투어 ‘을지유람’ 코스로 언론에서 여러 번 기사화된 인물이었다. 


흩어진 생산자들은 더 이상 전만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 협업 공정과 재료 확보가 당일로 가능했던 산업 생태계와 멀어졌고, 생산 비용이 세운지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증가했다. 새로 조성한 업장에서도 언제 또 쫓겨날지 알 수 없다. ‘을지유람’ 투어에 동참한 세운지구 세입자 대부분이 같은 위기를 맞았고, 불법 철거에 대한 세입자들의 민원에 대해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중구청은 작년부터 ‘新을지유람’ 코스를 운영했다. 노가리 골목을 포함, 방산시장에서 청계대림상가까지 코스에 들어간다.


2020년 2월 서울시는 그나마 전년의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시로서는 처음으로 재개발 구역 내부에 기존 공구상과 제조업체들을 위한 거점 구역을 만들어 입주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 원하는 세입자 모두가 입주할 수는 없다. 과거의 세운지구와 같은 도심 밀집형 산업 공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역사와 문화였던 세입자들이 지체 없이 쫓겨난 과거의 세운지구엔, 갑자기 상향된 주거 비율 조치로 개발 이익이 극대화된 ‘1천 세대’ 주상복합아파트가 예정대로 들어설 것이다. 도심의 값비싼 고층 아파트로 이득을 볼 자들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4 ‘Ausgang’, 그리고 축출의 시대


구유리의 셔터 오브제 ‘Aunsgang’, 우리말로 출구라는 의미를 갖는 이 전시작은 바로 이 밀려 버린 세운지구 일대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뮌헨 예술학교 학생인 그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단기간에 대규모 철거로 기술자들이 ‘청소’당하기 시작한 2018년 11월 - 2019년 1월 이후인 4월에 잠시 한국에 머무르는 중에 을지로를 보았다. 구유리는 닫힌 셔터들, 어딘가 모르게 아구가 안 맞고 아무렇게나 내려와 있는 셔터들과, ‘힙지로’ 사이에 있었다. 갑자기 쫓겨나는 공장 점포들과, 활기 넘치는 힙한 가게들이 하나의 구역에 나란히 존재하는 모습 사이에서 구유리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는 을지로에서 본 닫힘, 힙함, 그 이상한 공존과 나름의 활기를 뮌헨으로 돌아간 후에 ‘Ausgang’, 출구로 표현했다.


구멍 난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Ausgang’은 내구성이 약한 자재의 특성상 휘어지고 구부러진 모습 그대로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있다. 단 하나의 훅에 모서리 끝을 의지하고 다른 모서리 끝은 전시장 바닥에 디딘 채로 있다. 어딘지 불안한 느낌을 주는 휘어진 셔터는 몸통 전체를 이루는 작고 촘촘한 구멍들로 관통하는 빛들로 인해 발광한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띠가 칠해진 알록달록한 셔터는 전시장이 위치한 독일 땅에서는 보기 힘든, 셔터 스타일이다. 투명한 유리 속에 전시된 이 이국적인 셔터 오브제는 외부와 노출되는 시간만큼 그 영향을 그대로 받으면서 변형된다. 아슬아슬한 모양으로, 계속 매달려 있다.


이 셔터의 원본이 촘촘히 늘어섰던, 서울의 유서 깊은 도심 산업 공간은 원 공간에서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다.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4가역 사이를 변으로 하여 청계천 방향으로 촘촘히 밀집해 있던 많은 공구상가와 소규모 공장들이 저마다 발하던 작업장의 빛은 이제 거의 꺼졌다. 그러나 그 꺼져 가는 공간을 본 예술가의 보는 행위의 확장과 전이를 통하여, 흩어져 버린 공간의 조각 중 하나가 이역만리 독일의 오토브룬(Ottobrunn) 야외 전시장에서 작년 6월부터 전시되어 사람들에게 또다시 ‘보여’졌다.


오토브룬은 뮌헨의 외곽 지역이다. 거기 설치된 투명한 유리 전시장은 살인적 월세 때문에 뮌헨에서 레지던스 작업 공간을 구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난 어느 예술가의 작업 겸 전시 공간이다. 구유리는 그 공간에서 ‘Ausgang’을 ‘보여’준다. 을지로를 ‘보는’ 일이, 또 다른 도심에서 밀려난 예술가의 공간인 오토브룬의 전시장에서 재현됐다. 쫓겨난 자들의 셔터가 밀려난 자의 공간에서 출구로서 아슬아슬하게, 빛내며 매달려 있다. 닫힌 채로 다시 열리지 않는 을지로의 셔터는 오토브룬에서 출구가 되었다.


재개발, 말도 안 되는 임대료 상승, 내쫓기는 존재, 이 야만의 무한 반복을 유행처럼 목격하는 2020년, 우리는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재선을 노리는 시대에 산다. 소유가 아니라 돌봄으로써 공간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문화를 이루며, 공간의 가치를 생산한 사람들의 권리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감가상각의 비율보다 더 높게 세입자가 올려놓은 공간의 가치도, 소유권이 있는 자에게로 모두 귀속된다. 이곳에서 재개발은 힘 있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투자’ 기회로 인식되고, 그 ‘기회’의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싶어 하는 어떤 이들은 무리를 시도한다. 대다수는 뿌리내릴 곳이 없다. 세입자들은 도시재생의 공간에서 배제되고 내몰리며, 가난한 예술가들은 교외로 밀려난다.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지는 고도화된 자본주의를 두고, “축출 자본주의”라고 썼다. 보통의 사람들이 내몰리는 축출의 현실로서 성장과 풍요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드러내는 말이다. 지금 일상의 풍경인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실들이 곧 우리 사회의 각종 “축출 자본주의” 징후들 중 하나다.


그런데 여전히 그럴듯해 보이는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등에 없고 행해지는 재개발은 대체 ‘누구의 도시’를 재생하는 사업일까. 그들이 재생한다는 도시의 중심에서 축출되는 자들만이 충분히 예고된 그 재앙과 불공정 거래에 대해 증언하고 또 증언한다. 예술가들이 그 증언을 전시하고, 재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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