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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y 27. 2024

고객을 응대하는 일터에서 생각한 것

“네가 가져와야지!”


처음 보는 할머니가 느닷없이 큰소리로 반말을 던졌다. 블라우스 사이즈를 교환하러 온 그녀에게 사이즈 재고를 확인해주고 바꿔 갈 물건으로 가져오면 된다는 안내를 마치자마자. 스스로 가져오기 싫다고 소리칠 필요는 없지 않나? 어쩐 일로 기분 나쁜 채 옷가게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세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 할망구가…”라고 손님한테 말할 순 없으니. 직원 수가 적은 평일, 기다리시라는 말을 전한 후 뒷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도 위치를 잘 모르는 ‘이 할망구’ 물건을 재빨리 찾아와 처리했다. 원래는 손님에게 할인 방법이나 세탁 정보라도 더 주는 편이지만 그녀에겐 한마디 말도 더하지 않았다.


판매직을 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상상 속의 ‘뿔 달린’ 진상은 못 봤고, 불쾌함을 주는 손님은 주 20 시간 기준으로 연에 20명은 안 되는 것 같다. 규정이 뭔들 원하는 걸 조르는 사람이 제일 많다. 6개월 전, 1년 전 구매한 상품을 환불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꽥 소리친 할머니 손님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중 하나, 의사소통에 문제 있는 손님 유형은 다양하다. 그때그때 이런저런 손님 대하기가 어려운 건 아니다. 사람들은 서로 실수를 주고받으며 사는 거니까.


특이한 손님도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 유튜브 쇼츠보다 더 큰 신경 자극을 준다. 기저귀 채우지 않은 개를 안고 쇼핑하다 계산대 위에 옷과 개를 같이 올려두어 개 오줌판으로 만든 손님도 있었고, (견주는 어릴 때 보던 사극 드라마에서 꽤 비중 있던 조연 배우가 틀림없다.) 관련 법도 모르면서 카드 결제만 받으면 불법이라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다. 왕년에 미스코리아 출신이라고 매우 강조하던 그분은 최근 엄마와 싸운 이야기까지 계산대에 꺼내 놓았다. 우리 브랜드 걱정이 너무 지나쳤던 고객님도 있다. 평일 오전 방문한 이분은 재빠르게 매장을 돌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이며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속삭이던 말은 “언니이~ 여기 옷이 너무 안 예뻐어!!~!”였다. 몇 번씩 이 말을 하더니 온갖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옷이 안 예뻐서 손님이 없다는 둥(다른 옷가게가 그러하듯 평일 오전은 한산한 편이다), 초심을 잃었다는 둥, 회사의 다른 브랜드도 다 이상하다는 둥, ‘디자인하우스’가 다른 곳으로 바뀌었느냐는 둥. ‘디자인하우스'는 그대로라는 말에 그녀는 본사가 있는 외국으로 갈 것처럼 흥분했다. “아니 내가 진짜 본사 가서 따져야겠네!”라며 본사가 있는 외국으로 갈 태세였다. “명품 사는 사람들 다니는 데 물건이 이러면 어떡해에~ 어휴 정마아알!” 기이한 행동에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마침내 그녀는 깜짝 퀴즈를 냈다. “자기이, 내 모자가 얼만 줄 알어어~!?” 그제야 그녀가 쓴 야구 모자를 보니 전면에 명품 로고가 ‘뙇' 박혀 있었다.


정답은 80만 원. 마침 로고만 빼면 질감에 색까지 같은 모자가 우리 눈앞 할인 코너에서 만 원 대에 판매 중이었다. 할인 모자를 집어 본 그 손님은 모자를 던지듯 두고 나갔다. 하도 인상적이어서 다른 층 동료에게 뛰듯이 가서 이 흥미로운 손님 이야기를 했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갑자기 모자 가격까지 선제 공개하는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동료의 지적은 예리했다.


“자기가 쓴 모자랑 똑같은데 너무 싸서 화난 거 아니에요?”


‘나이스한' 고객도 많다. 하루는 마감 시간 무렵 들어온 분이 맡겨둔 물건을 사 가면서 집에서 챙겨온 한라봉과 에그 타르트를 내밀어서 당황했다. 단골도 아니고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타 지점 재고 확인을 하고 물건 예약을 해주는 건 기본 제공 서비스라 그리 고마워할 게 없는데. 그밖에 연세 있는 손님들은 대체로 직원에게 사이즈라벨과 관리라벨을 읽어봐달라고 할 때가 많다. 나이 드는 몸을 차별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공급자의 의무에 속하는데, 의류 라벨 인쇄 글씨가 하나같이 깨알 같아서 시력이 떨어지는 고객일수록 읽을 수 없다. 판매하는 입장에서 미안할 일인데, 어떤 분들은 묻기도 조심스러워하시고 알려줘서 고마워한다. 매일 무작위 일회성 만남이 주어지는 일터는 피상적이라곤 해도 내게 전에 못 본 인간 군상에서 새로운 인물들의 캐릭터와 행위의 디테일이 다름을 포착하는 공간이 되어 준다. 이곳에서 아무 사람이나 보고 대하면서 생각했다. 인품이란, 참으로 관계 능력의 문제다.


안 해봤을 땐 고객 응대 노동을 소모되는 일로만 여겼는데 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일을 할 때라고 ‘고객 응대’가 빠진 적도 없지 않은가. 상사도 ‘고객’이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만족하도록 생산하는 것이 노동의 기본값이고, 상사를 만족시켜야 생산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상품 고객님과 사용자는 당연히 고객이고. 그렇다면 일하는 것 자체가 늘 다양한 고객님을 대하는 것의 연속인데, 돌아보니 내겐 직전 상사가 최고의 ‘진상'이었다. 그녀는 계획한 일들을 진행시킬 수 없을 정도로 무단결근이 많아서 주간회의 한두 주 밀리는 정도는 애교였다. 대표 연락이 안 된다고 걸핏하면 걸려 오던 거래처 연락에 (나조차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되는 줄 알지 못하면서도) 외근 중이라고 둘러대곤 했었는데, 퇴사 후에도 대표에게 갈 연락이 내게 왔다. 지원금 지급 관련 대표 일처리가 진행 안 되고 있다는 관공서 안내를 담당자가 내 메일로 보낸 것이다. 2년 전을 회상하다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꽥 소리치는 고객님이 나는 훨씬 낫다. 무슨 일이든 나로 시작하는 노동이건만, 노동으로 만족을 얻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 너무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얻는 것이 노동의 성취이기에 모든 일은 다 노동자를 소모시키는 면을 억세게 장착하고 있다.


Robert Couse-Baker


그래도 ‘고객 응대 노동’이 구별되어, 특히 소모되는 일이라는 선입관이 강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급여가 낮고 힘이 약한 사람은 낮춰 보고 막 대해도 ‘괜찮은’ 사회에서 그 노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고객 응대 노동이 곧 소모전이 된다. 미성년자에도 예외 없다. 오히려 더 악랄하다.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현실, 현실 ‘덕분’이다. 비교적 최근작인 ⟨다음 소희⟩(2023)릉 떠올려보자. 영화의 모티프는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실제 사건이다. 피해자는 ‘아묻따' 식의 특성화고등학교의 취업 메커니즘 속에서 죽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몬 메커니즘은 이러했다.


교육부가 취업률만을 각 지역 교육청 평가 기준으로 삼았고, 그 취업률에 따라 교육청은 특성화고 각각 교장 성과급을 지급했으며, 실적 채우기만 급급한 특성화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노동 환경 전반을 파악할 책무를 안 하는 것은 물론 취업 안 된 학생들을 구체적으로 괴롭혔다. 학교에게 ‘갑’인 실습현장(㈜LB휴넷) 관리자들은 실습생에게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고, 원청인 대기업(LG유플러스)은 책임을 회피했다. 근로기준법에도 어긋나는 이면 계약서 관행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LB휴넷은 피해 학생에게 전략적으로 제때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고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에 모욕으로 응했다.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자 다음 해 교육부는 취업률 관련 통계와 평가 지표를 개선했다. 같은 해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조치가 시행됐다.


고객 응대 노동자들이 노동을 걸고 싸우는 2010년대 중후반에 나는 ‘비교적’ 안전한 직장생활을 했고, 프리랜서를 경험했다. 고객 응대 노동이란 개념이 없이 그런 부류 노동을 다 ‘알바’ 취급하던 2010년 초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땐 가벼운 화상을 입은 백화점 입점 초밥집에서 일당을 못 받았다. 올리브영에서 일할 땐 오후 계산대 교대 시 중간 정산에서 발생하는 전산상의 현금 차액 오류를 개인적으로 메꾸라는 부당한 상황에 따지지 못하고 억울과 불안 사이를 오가며 감정 소모를 했던 날도 있었다.


다시 고객 응대 노동을 하는 지금은 과거의 시절과는 분명 다른 세상임을 느낀다. 초기에 퇴근 시간이 몇 분씩 지연되는 문제는 개선됐고, 일터에서 소모만 되거나 일하면서 심각하게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느낀 일은 없다. 마감 때 계산기 상에서 발생한 오차 원인을 찾고 책임지는 주체는 물론 관리자다. 상식 이하 요구에 굽신거리는 직원을 아직은 못 봤다. 방문객에게 ‘그리팅(Greeting)’을 하라는 교육은 받았지만, 사랑이니 행복이니 애인도 아니고 고객에게 서비스할 내용으로는 영 괴상한 손님맞이 멘트를 장착하라고 지시받지 않았다.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손님을 반기고 마찬가지로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인사를 건네면 되돌려 주는 손님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옷가게 밖에서도 인사를 자주 하게 됐다. 나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면서 환경이 참 많이 변했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일터밖에 공존하는 다른 고객응대노동자의 경험을 찾아봤다. 아직 갈 길이 먼 현실을 다시 가늠해본다. 작년은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조치가 시행된 지 5년이어서 관련 설문조사 결과들이 발표됐다. 이 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자가 상당했고, 직장인 과반 이상이 민원인 갑질로부터 회사가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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