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더운 줄 알았다. 비행기 안은 물론 충분히 시원한 온도였다. 뭔가 결심한 듯 마침내 캐비닛 안에 가방을 넣었음에도 남자는 여전히 비행기 출입문 바로 좌석에 궁둥이를 안착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갈팡질팡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듯 보이는 그의 앞에는 두세 명의 승무원과 또 다른 직원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연신 이것저것 묻는 그 남자에게 바로바로 설명을 해주던 승무원들도 이제는 그에게 고민할 시간을 더 줄 수가 없었다. 이륙 시간이 이미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는 계속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비행기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방향으로 현실이 진행될수록 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았음에도 결정을 차마 번복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옆에는 가족들이 있었다.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중년의 남녀. 약을 먹지도 챙겨 오지도 않은 상태로 기내에 타자마자 증상이 발현된 (것으로 나는 유추하는) 남자에게 매니저로 보이는 승무원은 내리기를 간접적으로 권했었다. 다른 손님을 경험한 바, 이 정도면 이륙 시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알려줬었다. 그렇더라도 일단 참아보기로 정한 그의 식은땀 증세는 나아질 줄 모르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출 수 없는 기내 조건도 승무원에게 이미 설명 들은 바였다.
비행기 출입구를 폐쇄하고, 공항과 연결하는 통로가 분리됐다. '퓨욱 스읍-!' 기내 출입문이 본체와 완전히 압착됐음을 알리는 결정적 느낌의 소리가 나는 순간, 이제야말로 그 남자는 자기 몸의 결정에 맞출 마음이 확실히 정해진 것 같았다. 몸이 '이멀전씨 버튼'을 눌러 버려 그동안의 의지와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이 말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의자에 퍼지르지 못했던 하체를 벌떡 일으켜 황급히 캐비닛을 다시 열고 가방을 꺼낸 남자가 뒤늦게 승무원에게 자기 몸의 결정을 대신 전달했다. (아마도) “죄송한데 저 내릴게요.” 방금 탄 비행기에서 막 내릴 준비를 마친 그 남자가 내내 자신을 지켜보던 아내에게도 말했다. “여보 미안해.”
공황장애를 겪어 본 일이 없는 나는 상상만 해볼 수 있을 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남자가 갑작스레 맞닥뜨린 공황 증상을 얼마나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며 자기 것이라 생각했던 몸과 또 한 번 최대치를 모르고 불화하는 감각에 대해서. 몸이 바라는 결정을 종용당하자마자 단순히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몸 말고도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게 더 많아졌기 때문인지, 닫힌 비행기 문을 다시 열어도 좋다는 공항의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그의 시간은 더욱 불안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륙 시간에서 이미 10여 분 이상이 지나고 있었다. 팔과 다리와 팔꿈치와 몸 전체의 땀을 승무원이 건넨 충분치 못한 물휴지로 부지런히 닦고 있는 그에게서 사선으로 두 칸의 좌석 뒤에 앉은 나에게도 남자의 몸이 보내는 신호는 너무나 가시적이어서 지켜보기만 해도 목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모든 곳으로부터 물이 새어 들어오는데 피할 수가 없어 질식당해 죽을 것만 같은 압박이 몰려오는 게 공황발작 때 몸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 느낌에 대해서 표현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 남자가 느끼는 몸의 작용을 내가 실제로 알 순 없는 것이었다. '죽음 직전의 고통과 유사하겠구나' 역시 짐작만 할 뿐.
살아 있음이 분명함에도 죽음 직전의 고통을 점점 더 심하게 느끼는 공황 상태의 사람, 거기 미안함까지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남자가 불쌍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륙 지연을 문제 삼는 이가 아직 없었지만, 혹시 누구라도 시비를 걸까 봐 긴장의 끈을 놓기가 어려웠다. 알 수 없으니까. 만약 그런 승객이 있다면 승무원이 ‘제대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지. 승무원의 경력이 많은 것과는 별개의 한국의 사회문화적 병폐가 혹시 발생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럴 때 개입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내 목 근육도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 문을 열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은 승무원이 재빨리 출입구를 열었다. 남자는 드디어 자신을 옥죄는 비행기에서 해방됐고, 만석이었던 비행기의 한 좌석이 비었다. 나는 이제 그 남자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떼고 의자에 목을 기댔다.
비행 중에는 그 남자를 생각했다. 공황 장애를 겪는 몸의 결정에 응답한 직후, 공항으로 되돌아가는 통로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마음의 감옥으로 진입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식구 이상의 다른 일행과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계획을 짠 그는 오늘 이후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써서 일상을 놀아볼 계획을 했을 것이고, 그 시간과 세트로 묶인 큰 비용을 미리 지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보면 약 챙기는 걸 잊은 스스로의 과오로 그룹 여행에서 짝을 두고 본인만 빠졌으니, 이 모든 것이 전부 ‘나 홀로 휴가’를 위한 치밀한 의도와 고비용적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비행기에서 해방된 몸으로 가장 먼저 마주할 감정은 후회와 자괴감이 아닐까.
쉬는 것조차도 완벽히 준비 못한 책임으로 휴일의 시작을 많이 허비한 그 남자는 그날을 어떻게 보냈을까. 평소라면 별로 눈길도 주지 않았을 중년의 그 아저씨를 여행지의 저녁에도 떠올린다. 잘 쉬고, 잠시 일행이었던 관계들과 서로 각각 좋은 휴식이 될 수 있게 안부를 주고받았을지 모르겠다. 오늘 그 중년의 아저씨가 아팠던 일로 나는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위해 출입구를 닫고도 비상시 어떻게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해 별 값을 치르지 않고 우연한 기회로 알았고, 세상 어떤 많은 이유와 상황으로 비행기가 지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은 더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