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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어발굴실천회 Apr 09. 2022

잘 들으면 잘 팔린다


어느 날 호주 T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 T사는 호주에서 가장 큰 소매체인으로, 우리는 T사의 PB(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제품을 OEM형태로 제조 공급하고 있었다. T사는 문제 제품의 공급액뿐 아니라, 영업손실과 브랜드 이미지 실추까지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제품을 팔기 위해 들어간 물류비, 광고선전비 등의 판매관리비와 자사 PB상품 브랜드 신뢰도에 끼친 영향까지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우리가 판매한 OEM제품 공급가를 훨씬 뛰어넘어 회사를 휘청이게 할 만한 액수였다.


우선은 방향설정이 필요했다. ‘영업손실과 브랜드 이미지 실추까지 배상하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이고, 이렇게 요구하는 바이어와는 거래할 수 없다’고 하며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클레임을 활용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신뢰를 회복하여 궁극적으로는 거래 품목을 확대하는 방향을 택했다. 


우선 할 일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클레임에 대한 원인파악, 재발방지 대책을 우선 보냈다. 이제 배상액을 최소한으로 줄일 차례다. 다른 회사에서 T사로 이직하며 첫 거래를 성사시켜준 C는 휴직중이었고 친정이 있는 스페인에 있었다. T사 내부에는 우리를 지원사격해 줄 사람이 없었다. T사는 손해배상 규모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메일과 전화로는 진짜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파악하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지구 아래쪽 반대편에 있는 호주로 날아갔다. 3일에 걸친 회의를 통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최소한의 배상과 추가적인 신제품 개발을 하기로 하고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클레임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적대적인 감정이 있거나, 생소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기가 어렵다. 역으로 말하면 우호적 감정이 있거나 익숙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경청은 어떤 태도로 하는가


듣기만 잘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잘 듣는다’는 뜻으로 경청(傾聽)이라는 단어를 쓴다.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경청하기를 연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 듣는 것이 경청하는 것일까? 한자의 뜻과 모양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운다는 뜻의 傾(경)이다.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 듣다 보면 몸이 앞으로 기울게 된다. 다음은 듣는다는 뜻의 聽(청)이다. 聽자에는 귀 耳(이)자와 눈 目(목)자, 마음 心(심)자가 들어 있다. 즉, 상대에게 기울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공감하는 태도를 뜻한다.


주도적 경청 3종 세트 (따라하기, 정리하기, 질문하기)


상대방이 하는 말에 단순히 맞장구를 치거나 ‘아, 와’ 등의 감탄사를 넣는다고 경청을 잘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래의 세가지 주도적 경청 기법을 통해, 경청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친밀감을 어떻게 형성할 지 알아보자.


따라하기


친구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지난 주말에 갖다 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당신: “주말에 경주에 갔는데, 공기가 무척 좋더라고.”

친구: “으응.”


2.

당신: “주말에 경주에 갔는데, 공기가 무척 좋더라고.”

친구: “아, 공기가 좋았구나.”


1번과 2번 중 친구의 어떤 반응이 당신의 이야기를 더 잘 듣고 있다고 느껴지는가? 상대가 한 말의 핵심 부분을 넣어 따라해 주면 상대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느낀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느낀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친밀감을 갖게 된다.


이런 따라하기가 음성 언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장류의 거울신경체계 이론에 따르면, 말 뿐 아니라 몸짓 언어에서도 따라하기가 친밀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예를 들면, 상대가 커피잔을 들면 우리도 커피잔을 들고, 상대가 필기하려고 펜을 잡으면 우리도 펜을 잡는 것이다. 


정리하기


상대방이 문제 상황에 대해서 이것 저것 쏟아낼 때 또는 자신의 마음을 애매하게 표현할 때가 있다.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정리해서 표현하면 “그렇죠!”라는 반응이 튀어나온다. 동의와 함께 답답함이 풀리면서 친밀감을 갖게 된다.


T사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수입 담당자, 운영팀장이 클레임 때문에 호주 전국 매장에서 받은 불만 접수와 물류의 혼란에 대해 이것 저것 이야기했다. 나는 그 내용을 정리하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셨네요. 이제는 해결이라는 결론에 집중하고 싶으신 것 같군요.”라고 했다. 상대방이 문제를 수습해야 했던 ‘상황을 공감’하고, '긍정적 의미(엄청난 노력)를 부여'했다. 그리고 함께 풀어갈 '방향을 제시(해결에 집중)'했다. 


질문하기


해외영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질문으로 경청하기 기법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화장품을 제조 공급하는 제조사의 경우이다.


바이어: “요즘 한국에 에어쿠션이라는 제품이 좋다고들 하던데요.”

우리: “그럼요, 에어쿠션이 왜 좋으냐면요…(설명이 이어진다)”


이렇게 대화를 끌어가면 설명을 하고 바이어에게 끌려가게 된다. 어떻게 바꿔보면 좋을까?


바이어: “요즘 한국에 에어쿠션이라는 제품이 좋다고들 하던데요.”

우리: “어떤 점이 좋다고 하던가요?”


이렇게 되면 바이어는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질문하는 사람이 대화의 칼자루를 쥐는 것이다.


따라하기, 정리하기, 질문하기. 협상의 탁월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주도적 경청 3종세트이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 그 누군가에게 하루에 딱 한번만 연습해보자. 한 주에 하나의 기법을 훈련하는 기분으로. 경청을 잘 하면 상대의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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