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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Jun 26. 2023

조용한 퇴사가 시작된다

유난히 조용한 날, 과장이 은밀하게 불러 사무분장에 대해 묻습니다.

 

는 몇 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B팀장이 과장에게 업무를 조정해 달라고 한 모양입니다. 선뜻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건 언제나 그렇기에 그런 얘길 꺼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 조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B팀원 한 명이 결혼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랍니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저는 손가락으로 제 귀를 후벼 팠습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요?     


결혼까지는 아직 5개월이나 남았고,

경조휴가에 본인의 휴가를 더하더라고 공석은 2주인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팀이라니.

겸손해도 너무나 겸손한 B팀장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닥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업무를 받아버린다면

B팀이 극도의 무기력함에 빠질 것 같아 애써 그들의 역량을 치켜세워 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성공사례를 꺼내진 못했지만 개개인의 성품이 착하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높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말이죠.

      

B팀의 업무가 전문성과 업무의 연속성이 확보되어야 해서 한시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일이라면 모를까. 우린 이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내가 없으면 조직이 움직이지 않을 거란 생각이 완벽한 착각임을 인지하지 않았습니까?  내부조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정은 또 무엇이 있는 걸까요?     


그 후로도 과장의 이야기는 이어졌고,

들었으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나열로 시간만 흘렀습니다.      


기피하는 업무를 넘기려는 냄새가 지독해질 무렵

저는 그만 입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사무분장이 있었습니다.


그날 과장의 물음에 대한 저의 의견은 시행문 어디에서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죠.

권한 있는 자의 의지대로 결정되었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했던 가요. 사무분장하려고 굳이 출세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 근무하니 서로 공감하는 지점이 있기를 바랐거든요.

하지만 매번 좌절했고, 또 희망을 버리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른 희망을 품어 보려고요.     


Quiet Quitting!

쉿! 오늘부터 1일입니다.     



Image b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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