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이었을 때,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새집에서의 기쁨보다 무언가에 쫓기듯 옮겼다.
모두가 분주했던 어느 날,
어떤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홀로 집에 있었다.
TV도 없고 친구도 없이 3층 집 발코니 창을 통해
동네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엄마~ 엄마~" 하고 소리쳤다.
"그런다고 엄마가 오니?"
아래층에서 귀찮은 듯 무심한 아저씨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마주칠까, 재빨리 몸을 돌려 창 아래로 숨었다.
그날 엄마가 언제 오셨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나는 혼자였고 애타게 엄마를 그리워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읽게 된
여러 책들 중에 이태준 작가의 <엄마 마중>이 있다.
전차가 다니던 시절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기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가
들어오는 전차를 보고 차장에게 묻는다.
"우리 엄마 안 오?"
그러면 차장은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라고 한다.
똑같이 묻고 똑같이 답하는 상황이 한 차례 더 이어지고
어느 한 차장이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구나.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가슴이 쿵쾅거리는 책이다.
추운 날, 낯선 어른들이 가득한 곳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은 애타게 엄마를 찾았던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더 닮았다.
내게는 할머니가 세 분이다. 외할머니 한 분에,
친할머니 두 분. 아버지는 어머니가 두 명이다.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와 세상을 달리했다.
새로운 어머니가 생겼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님과 새로운 어머니의 자식인 동생들과 함께 살았다.
세탁소, 건설업을 하며 대가족이 모여 살 2층 집을 지었다.
장손으로 부모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며,
경제적으로 부모와 자신을 구분하는 것을 불효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오래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나는 그 집에서 나왔고,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곤궁한 시절을 보냈다.
모르는 이들과 출입계단을 같이 사용했다.
4인 가족에 방이 2개였는데, 방 하나를 월세 줬다.
어머니는 가정주부라 불렸으나,
소일거리를 가져와 손이 쉴 새 없었고, 납품하러 가실 때면 나는 홀로 남았다.
좁고 긴 발코니의 일부에 장판을 깔아 내 방이라 불렀다.
이불을 펼치고 어린 몸 하나 누이면 꽉 차는 곳이지만,
종종 밤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곳에서 저녁이면 어김없이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며,
짧은 외로움에도 소리 내어 엄마를 불렀다.
책 <엄마 마중>을 읽을 때면 종종 내 곁에
'어린 아빠'를 떠올린다.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
어디에 서서 얼마나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아빠' 말이다.
여든을 앞둔 아버지를 볼 때면, 종종
엄마를 기다리던 여덟 살 어린 아빠가 겹쳐 보인다.
그래서 꼬옥 껴안는다.
아버지를 그리고 어린 아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