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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Aug 06. 2023

Ep.21 요양을 안 하려면 휴양을 하세요

[군함 타고 세계일주]

Do you know Acapulco?(아카풀코를 아세요?)


아마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카풀코란 도시는 많이 생소할 것이다. 아카풀코가 멕시코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 이곳이 멕시코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라고 하면 "멕시코는 칸쿤 아냐?"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칸쿤이 익숙하다. 아마 멕시코 최고 휴양지?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칸쿤", 열에 하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거다. 그만큼 칸쿤 말고는 아는 휴양지가 없는 것이다. 나같이 아카풀코 다녀온 거 티 내고 싶은 관종만이 아카풀코라고 하지 않을까? (뜨끔한 사람 손?)


한국인의 유명 스팟 칸쿤은 멕시코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에메랄드 빛 카리브해 연안에 초호화 호텔이 가득한 그곳은, 유명세가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나라에도 퍼져 초호화 신혼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워너비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 역시도 지인이 신혼여행을 칸쿤으로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 좋았겠다!"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솔직히 칸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만큼 그냥 칸쿤! 하면 초호화 휴양지로의 이미지가 각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뇌일 수도 있겠다는 음모론이 머릿속에 잠시 맴돈다!)


근데 꽤나 놀랍게도 칸쿤이 세계적인 휴양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1970년대에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세계 유명 호텔, 리조트 체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니까 백 년은커녕 5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휴양지인 셈이다. 이렇게 떠오르는 신성 칸쿤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빼앗은 곳이 바로 아카풀코다.


칸쿤이 멕시코 동쪽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아카풀코는 멕시코 서부 즉, 태평양 연안에 위치해 있는데, 아카풀코가 멕시코의 유명 휴양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수도와 가까워서'이다. 수도인 멕시코시티와는 차로 3~4시간의 거리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인데 이 정도면 이 나라에서는 가까운 편이다. 서울 사는 20대 남자들이 "기분 울적하면 을왕리 갈래? 나 차 있잖아" 하며 썸녀를 꼬실 때처럼 쓰이지 않았을까? (정작 나는 을왕리를 가본 적이 없다. 썸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서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해서 일거다. 그래야만 한다.)


무튼 순항훈련전단은 미국을 떠나 며칠 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의 을왕리에 도착을 했는데, 첫인상은 을왕리답지 않게 '북적이지 않아서 좋다'였다. 유명한 휴양지이면서도 북적이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해수욕장에 사람 가득, 맛집에 사람 가득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어딜 가든 여유로운 느낌이랄까. 성수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성수기인지 비성수기인지도 모른 채 이곳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이다. (이런 간단한 기초정보조차 담기지 않은 이 책은 여행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면 0점에 가깝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수기이든 아니든 나로서는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는데 그만큼 지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쉬고 싶어서 작은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를 예약했다. 해수욕장이 바로 보이는 그런 고급 리조트는 아니고 바닷가 하고는 조금 떨어진 거의 우리들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리조트. 그곳에 가서 우리는 짐을 풀었다. (이제 알겠다. 아카풀코의 10월은 무조건 비수기이다. 가난한 대학생인 우리가 리조트를 거의 통째로 빌린 것처럼 쓸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에어컨부터 틀고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딱딱함 그 자체인 군함의 철제그물 침대와는 다르게 푹신함이 몸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으~ 좋아!’가 자동으로 나오는 그런 푹신함을 다들 느껴본 적 있지 않나? 그런 푹신함 속에서 우리는 잠시 낮잠을 즐겼다. 낮잠을 즐기고 나니 땅을 뚫을 듯이 강력하게 내리쬐던 태양이 조금은 약해져 물놀이를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부는 리조트에 있는 작은 수영장에 뛰어들고, 일부는 바닷가로 나가 바다수영을 했다. 민물이든 바닷물이든 공통점은 사람을 배고프게 만든다는 점인데, 물놀이 덕분에 저녁에 먹는 타코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는 그 순간에 맞는 휴양법이 있다. 휴양이라고 함은 꼭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흠뻑쇼나 워터밤 같은 축제에 가서 일상동안 억눌러왔던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휴양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해변에서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휴양이고. 누군가에게는 에어컨 나오는 방에서 먹고 자고 뒹굴고 하는 게 휴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휴양이 달라진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보통 에너지를 발산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곳 아카풀코에 도착했을 때에는 쉼이 필요했다. 무려 30일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태평양을 건너왔기에 멈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멈추는 법을 모르는 기차는 탈이 난다. 우리 역시 쉼을 통해 제대로 휴양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요양을 하지 않으려면 휴양을 해라!”라는 명언 같지 않은 명언을 만들고 나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한없이 바쁜 군생활 중에 얻은 이 잠깐의 멈춤. 이 귀한 멈춤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항해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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