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아 쉬고 싶다!‘
군함 타고 세계일주를 떠난 지도 어느덧 30일이 되어간다. 충무공이순신함(DDH-2)과 대청함(AOE)이 군함치고는 큰 배들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60명의 룸메라니. 사관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나는 분명 I였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누구보다 E가 되어 있는 나를 본다. ‘E가 아닌 자 60인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60인실에서 살아남은 자의 하루는 대게 이러하다. 바다를 항해할 때는 훈련과 교육의 연속이고, 정박해서는 행사와 관광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우리들의 스케줄에는 쉬는 시간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쉬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군함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빈다는 것이 누구나 쉽게 해 볼 수 없는 의미 있는 경험이라지만 피곤이 조금씩 쌓이는 것은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차곡차곡 쌓이는 피곤이 역치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쉼을 갈구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4년 간의 사관생도 과정이 그랬다. 매일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나 팔굽혀펴기와 단체구보로 시작하여, 오전 오후에는 고등학생처럼 공강 없이 꽉꽉 채워져 있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선배들의 사랑(정말 가끔은 훈련을 빙자한 괴롭힘)을 받는 하루가 매일매일 지속된다. “오늘 훈련 제대로 못 받았으니까 내일 또 보자”는 선배의 사랑이 담긴 말은 하루의 마지막에 들을 수 있는 문장치고는 얼마나 짜릿하던지. 선배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고 침대에 누워서야 바쁜 하루는 끝이 난다. 물론 누웠다가 일어나면 또 다른 바쁜 하루의 시작이지만.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배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익명의 모 선배님은 “잠은 죽어서야 자는 것”이고 “기절하듯 잠들지 않으면 그날은 최선을 다한 하루가 아니다”는 명언을 남기셨는데, 다들 그 말을 하는 선배가 무서우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한 거 보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생도들의 미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죽어서야 잠에 들 것처럼 하루하루를 꽉꽉 채우는 삶을 우리는 4년 동안 살았다. 돌이켜보면 사관생도 과정이란 피곤함이 우리를 지배하여 끊임없이 쉬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 그 욕구를 이겨내는 인내심을 기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인내심의 역치가 높은 우리들이라고는 하지만 매일을 바쁘게 살다 보면 하염없이 쳇바퀴를 굴리고 있는 다람쥐가 된 것 같거나 영원히 바위를 산 정상 위로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가 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시기가 오면 ‘아 쉬고 싶다’가 절로 나오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로 발전하게 되는데 회의주의가 나를 지배하려 들 때쯤 우리에게 방학이라는 쉼이 주어진다. 방학은 참 신비하다. 2~3달의 방학을 즐기는 일반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우리들의 방학은 겨우 3~4주 밖에 되지 않는데도 그 짧은 시간 덕분에 다시금 시작할 힘을 얻는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도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비인간적인 전장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군인으로 커나가는 우리 생도들에게도 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해 보이는 인생의 역설이다. 쉬어가야 멀리 갈 수 있다. 쉬어야 더 잘 싸울 수 있다.
인내력의 수준이 정점에 다다랐을 우리 4학년 생도들일지라도 군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105일이라는 시간은 쉽지가 않다. 105일 내내 꼬박 배에서 생활하다 보니 인내의 역치를 건드릴 때가 무조건 한 번씩은 온다. 평소라면 화를 안 낼 만한 상황인데 옆에 있는 동기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훈련과 교육을 대하는 열정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1/3이 넘어가던 그 시점이 딱 그랬다. 세계일주의 설렘이 사라지고 ‘얼른 한국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기가 막히게도 우리는 도착한다. 쉼의 도시 아카풀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