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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Aug 07. 2023

Ep.22 더울 땐?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군함 타고 세계일주]

아카풀코는 휴양의 도시답게 날이 덥다. 연중 대부분의 날씨가 우리나라의 여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방문한 10월은 가장 더운 여름이 아니기도 하고 우리나라나 동남아처럼 엄청 습하지도 않아서 휴양하기에는 꽤나 괜찮은 날씨였다.


휴양하기에는 괜찮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활동하기에는 꽤나 무덥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해가 가장 높게 떠있는 시간에는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리조트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뒹구르르 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육체건강에도 이롭다. 이런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


- 오랜만에 쉬니까 진짜 좋다. 배가 리조트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 욕심도 많다야ㅋㅋ 쫌 쉬다가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거 구경하러 가자

- (…) 응? 뭘 구경한다고?


밥을 든든하게 먹고 누워 잠에 빠질 듯 말 듯 나른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아카풀코 가이드북을 유심히 보던 동기 하나가 뜬금없이 건넨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 향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다니. 심지어 그걸 보러 가자니. 그게 관광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싶었는데 절벽 다이빙이 아카풀코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란다.


라 케브라다에서의 죽음의 다이빙(출처 : 두산백과)


절벽 다이빙은 라 케브라다(La Quebrada)라는 절벽에서 볼 수 있는데, 케브라다가 스페인어로 절벽이라는 뜻이다. 라 케브라다는 무려 45m 높이의 절벽으로 그곳에서는 매일 죽음의 다이빙이 벌어진다. 전문 다이버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절벽을 타고 올라간다.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간 그들은 그곳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상에 기도를 드린 다음, 맨몸으로 바닷물을 향해 뛰어들 준비를 한다. 다이빙 선수들이 다이빙 점프대에 서있을 때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보듯이, 아카풀코의 다이버들이 뛰어들 타이밍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들에게 들숨, 날숨의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 우리들을 볼 수 있다.


절벽이 일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사선으로 되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얇게 점프하면 바위에 떨어지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살 떨리는 그 적막의 순간이 지나고 다이버가 바닷물을 향해 몸을 날려 시원하게 입수를 하게 되면 왠지 모를 안도감과 너무나도 짜릿한 감정이 함께 올라온다.


몇 명의 다이버들이 순서대로 다이빙하는 것을 보고 나면 라 케브라다에서의 죽음의 다이빙 공연이 끝나게 된다. 실제 다이빙하는 시간은 정말 짧지만 다이빙하기까지의 시간은 우리들의 마음을 짜릿하게 만들어 주는데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위험한 공연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일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를 비롯한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안전문제로 진작에 금지시키지 않았을까?)


멕시코에서도 언젠가는 금지되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다이빙이 어떻게 시작됐을지가 문득 궁금했다. 죽음의 다이빙은 1930년대 절벽을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들에 의해 시작된 놀이라고 전해진다. 리고베르토 아팍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뛰어내리고 나서 유행하기 시작한 다이빙은 입소문을 타더니 어느샌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해진 공연이 되었다. 심지어 아카풀코 절벽 다이버들이 세계 다이버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어 그들의 모임이 다이버협회로까지 커졌다고 하니 아이들의 놀이를 그저 위험하다고 하지 못 하게 막는 것이 얼마나 창의력을 제한시키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만하다. 마치 게임 좋아하는 아이들이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짜릿한 공연의 긴 여운을 가지고 배에 복귀한 나는, 점호를 마치고 철제그물침대에 누워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자라는 것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참 중요하다고.


이곳 아카풀코는 활동하기에는 너무 무덥다. 특히 그 활동이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해나가기엔 너무 덥다. 그래서 제조업과 같은 산업들이 발달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여기서 조금만 살아보면 안다. 더워서 웬만하면 무언가를 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달랐다. 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도시에서 그들은 제대로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있음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무더위를 쫓기 위해 공포를 이겨내고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림을 선택했던 아이들. 그 뛰어내리는 것으로부터 짜릿함을 느끼고 생명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던 그들. 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도시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표현해 낸 것이 아닐까? 나 여기서 삶을 제대로 느끼고 살아갈 거라면서.


'자연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생각을 만든다.' 그만큼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 인간들은 자연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연에 맞게 잘 살아가는 것을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 사람이다. 그 자연에 맞는 문화와 생각을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주체 역시 우리 사람이다. 자연환경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화,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제대로 만나야 그에 걸맞는 고유문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더울 땐 절벽으로 뛰어내리던 라 케브라다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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