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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Aug 08. 2023

Ep.23 태권도 시범팀#2_알고 보니 나도 한류스타?

[군함 타고 세계일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멕시코 아카풀코에 정박한 우리는 조금은 투덜투덜 대며 태권도 공연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전 기항지인 LA에서도 공연하느라 관광할 시간을 하루 빼앗겼기 때문에 멕시코에서의 공연 역시 '시간을 빼앗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투덜이 시범팀을 실은 버스는 어느 한 광장의 모퉁이에 도착했고 우리들은 무덤덤한 마음으로 소품을 주섬주섬 챙겨 내리기 시작했다.


광장은 관광지인 해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소위 현지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동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랄까? 로컬동네에 낯선 복장을 한 동양인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는지 한적했던 광장에 사람들이 금방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공연시간이 임박했을 때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덩달아 우리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은 관심이 어색한 아마추어들이었기 때문이다. 버스에 타고 있을 때만 해도 분명 투덜투덜 반, 무덤덤 반이었던 우리들이 괜히 하이파이브를 해가며 파이팅을 외치고 상기된 표정을 하게 된 걸 보면,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전통 무예인 태권도를 잘 보여줘야겠다는 일말의 다짐 비스무리한 것이 생겨나진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스름해진 여름 저녁의 분위기와, 광장에 가득 찬 사람들의 기대감 그리고 상기된 우리의 다짐 비스무리한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의 공연은 시작됐다.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추는 태권무로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폭죽이 내장된 송판을 격파하는 것으로 나름의 피날레를 찍었다. (원래 아이템빨이 좀 필요하다.) 연습을 하기 어려운 환경인 좁은 군함에서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는 못 했지만,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온 우리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전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공연이 성황리에 끝이 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늘 그랬듯이 뒷정리다. 보통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람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흩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뒷정리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멕시코의 관람객 몇몇 분들이 뒷정리를 하는 우리들에게 송판을 주워서 건네주시길래 ‘여기 분들은 참 착하시다. 치우는 것도 도와주시는구나’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송판을 받아서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는데 그분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 혹시 그거 가져도 되나요?

- 네? 송판을요?

- 네네! 싸인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싸인이요??


송판에 싸인을 해달라고 하시는데 당연히 연예인도 아닌 우리들에게 싸인이 있을 리는 없었고, 이름이라도 적어달라는 그분들의 부탁에 싸인 대신 우리들의 이름을 영어로, 한글로 적어서 드렸다. 마치 영수증에 서명하는 느낌이랄까? 본인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달라고 하신 분도 계셨는데 나중에 페이스북에 송판에 적힌 본인 한글 이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시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예인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다. 물론 한글로 쓰여있는 본인 이름이 신기했던 거였겠지만(웃음)


그날 군함에 돌아온 우리는 평소와는 좀 달랐다. 다른 도시에서는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온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광시간을 빼앗긴 자들은’ 부러워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부러워 하기는커녕 너네 뭐 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무언가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싸인 연습”이었다. 이제 막 데뷔조에 포함된 아이돌 연습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싸인을 정하듯, 우리도 서로 이거 어때? 그건 좀 별론데? 딴 거 만들어봐 하면서 싸인 만들기 삼매경에 빠졌다. 새삼 연예인병이 걸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관광시간을 빼앗긴 게 아니라 ‘K-연예인으로서 공연’하고 온 게 아니겠어?


그래서 K-연예인께서는 정성스레 만든 싸인을 해줄 기회가 또 있었냐고? 극성팬들에게 헌팅을 당해 싸인을 선물하고 함께 데이트를 했던 썰이 있다. 기대가 되신다면 To be continue, Coming soon in P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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