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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Sep 05. 2023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일곱 시 전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웬 일? 공항 내부는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지난 주말 휴가를 즐기고 아침 일찍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화려하고 예쁜 외모의 젊은 남녀 커플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던 점은 여성은 빈 손으로 모델처럼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는 반면 남성은 양손 가득 짐을 든 것도 모자라 목에도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핸드백을 걸고 힘겹게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뭔가 남들이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썩 보기에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일정에 쫓겼던 나는 서둘러 그들의 앞을 지나쳤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앞 좌석으로 젊은 커플이 장난을 치며 소란스럽게 앉는 것이 보였다. 유심히 보니 아까 보았던 그 예쁜 외모의 젊은 남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성이 애교를 부리며 남성 쪽으로 기대 누웠다. 그리고는 무엇을 하는지 좌석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장난을 쳤다. 장난을 거는 쪽은 여성이다. 남성이 웃으며 그만하라고 한다. 그러자 여성이 고운 손을 어깨 위로 들더니 남성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짝!



소리가 날 정도의 세기였다. 아마 남성이 그 정도의 세기로 여성을 때렸다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남성은 자주 있는 일인지 아무렇지 않게 넘겼고 여성은 그런 그의 머리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계속 장난스럽게 치고 있었다. 여성이 뿌린 듯한 독한 향수 냄새가 어느새 내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그것인데 오늘따라 하수구 악취처럼 느껴졌다. 남성의 어깨에 기대다 좌석 사이로 삐져나온 윤기 나는 그녀의 탐스런 머리카락조차 실뱀처럼 징그럽게 여겨졌다.



나는 왜 갑자기 연예인처럼 예쁜 외모의 그녀가 징그러울 정도로 싫어진 걸까?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모와 마음의 간극이 커서? 저 바보처럼 맞고 있는 훈남이 내 아들처럼 느껴져서? 알 수 없는 혐오감이 마음 가득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힘든 시간이 흐른 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따라 순서대로 내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가는 것이 보였다. 아까 탑승할 때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다친 팔을 수술한 서울 병원에 치료차 오는 길에 서울 사는 아들 가족을 위해 집에서 손수 키운 호박 같은 채소와 나물들을 싸가지고 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아들은 한사코 만류했다는데 아들에게 꼭 먹이고 싶어 몸도 안 좋으신데 바리바리 챙겨 왔단다. 그 미련스러운 자식 사랑에서 내 엄마가 느껴졌다.



서울 어느 병원이에요?



나는 할머니의 손에 든 짐을 슬그머니 가져왔다.



아이고 아이고 고마워요. 힘들텐디.



어느 병원이에요? 가시는 데가 비슷하면 제가 들어드릴게요.



아이고 괜찮은디 고마워요.



다행히 내가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병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시겠다고 하셔서 나는 택시까지 모셔드리기로 했다.


아! 어머니 그건 모범택시예요.
왜? 이거 타면 안 돼?
예. 많이 비싸서요.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선생님 아니었으면 쌩 돈 날릴 뿐 했어.


어느샌가 나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서초에 있는 00 병원 부탁합니다.


아이고. 고마워요잉.


예 조심해서 가세요.


택시에 탄 할머니 아니 어머니가 내게 고마움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나 역시 그녀에게 아들처럼 환한 작별인사를 건넸다.


문득 비행 내내 가득했던 내 마음속 미움과 혐오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자그마한 노력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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