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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r 27. 2024

오늘이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기를...



이른 아침, 고2인 큰 아이가 통학 버스를 놓쳐 자동차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출근길 도로 위는 성질 급한 자동차로 뒤엉켜 있어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서둘러 돌아가서 출근 준비를 해야 했기에 나 역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된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멘트가 귀에 꽂혀 왔다. 평소에는 극도로 하이톤이었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슬프게 느껴졌다. 그와는 우연하게 같은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받았던 기억이 있다  문득 그때 그가 우리들 앞에서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빡빡머리 훈련병의 모습으로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나도 좋아했던 노래였던지라 삼십 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그때 그의 모습도 오늘처럼 우울했다.



내 회상 장면을 비집고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암에 걸린 제 지인은 다시 한번 와인 한 잔 마시며 수다 떨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그렇게 저랑 아무렇지 않게 자주 마셨는데요."



그렇다. 보통 버킷리스트라고 하면 에베레스트에 등반하기, 알프스에서 스카이 다이빙하기,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서 보기 같은 거창한 것들을 우선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도 과연 그러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고 병마저 들게 되면 그저 지겹고 평범했던 일상을 다시 한번 영위해 보는 것 만으로 버킷리스트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그것이 월요일의 출근길 같이 극도로 싫어하고 저주했던 루틴일지라도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고단한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이 고단한 일상은 그대로


훗날 우리의 버킷리스트가 될 것이다.




오늘에 감사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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