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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r 16. 2024

교통사고

운수 좋은 날



휴일임에도 아침 일찍 회사로 나서야 했다.


" 큰 애가 내장탕 먹고 싶다고 했는데요. "


잠이 덜 깬 아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내게 말을 했다.

자동차가 한 대인 까닭에 내가 회사로 차를 가져가 버리면, 큰 아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식당의 내장탕을 먹을 수 없게 된다.


" 식당에 미리 포장 주문을 해 둘 테니까 나만 내려주면 얼른 받아서 가지고 올게요. "


" 그냥 내장탕 말고 다른 거 먹이면 안 돼요? "


라고 대뜸 물어보고 싶었지만 고2인 큰 아이에게 뭐라도 하나 챙겨 먹이고 싶은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얼른 구겨 넣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휴일에 회사로 나서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식당까지 돌아서 가야 하니 짜증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인지라 휴일 아침임에도 내 마음에서는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 가스가 얼마 안 남았네. 이따가 오면서 충전할 수 있어요? "

"....."

"그럼 그냥 나중에 내가 할게요."

"아니, 이따가 오면서 내가 충전할게요."

"어? 할인카드를 안 가지고 왔네."

"....."

"이따가 내장탕 집에 놓고 카드 가져올 테니 집 앞에서 좀 기다릴래요?"

"....."

"그럼, 그냥 다음에 충전해요."

"알았어요. 기다릴 테니 할인카드 가져다줘요."


"그냥 이번에는 일반카드로 하면 안 돼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내가 주유할인카드를 사용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아쉬워하는 줄 알았기에 잠자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포장된 내장탕을 받기 위해 비상등을 켠 채 자동차를 4차선 도로의 가장자리에 세웠다.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이미 주차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침 자동차 한 대가 빠져나가고 있었기에 운 좋게 주차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찾으러 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량 한 대가 내 앞으로 오더니 그대로 멈추는 것이 보였다. 설마 그 자리에 세울까 싶었다. 그가 세우려는 곳이 2차선도 아니고 1차선 한가운데였기 때문이었다. 차량 두 대가 나란히 1차선 2차선을 모두 점유하고 있는 까닭에 다음 차량이 그 차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중앙선을 침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아내가 포장된 음식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금방 빠져나갈 줄 알았던 내 앞 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 역시 다른 차량들과 마친가지로 중앙선을 넘어서야 그 차를 지나갈 수 있었다.


"에이 C!!!"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나왔다. 순간 아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모처럼 맞는 휴일의 좋은 기분이 어그러져 버린 것 같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 카드로 결제하고 이 카드로는 포인트 적립하면 돼요."

집에 음식을 놓고 카드를 가져온 아내가 내게 두 개의 카드를 하나씩 보여주며 말을 했다.


"......"

"그럼, 다녀와요."


그렇게 마지못한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자동차를 후진하는 찰나였다.


"쾅!!!!


핸들로 느껴지는 커다란 충격에 머리가 쭈뼛 서며 잠시동안 아무것도 할 수조차 없었다. 오른쪽 백미러로 아내가 놀라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인가?'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두 방망이질 치며 사정없이 달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느릿한 동작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떨려오는 다리를 땅에 딛고선 차량 바깥으로 나갔다. 봄날의 아침 햇살이 사정없이 내 눈앞에 부서지며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흐릿하게 아내가 낯 선 차량의 안쪽을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내 뒤에서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보지 못한 채 후진을 해 오른쪽 옆 면을 그대로 들이박아 버린 것이었다. 강렬한 아침 햇살에 흐릿해진 후방 카메라의 화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아. 저도 너무 바짝 붙여 세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들 때문에 바쁜 일이 있어 마음이 너무 급했네요."


"아뇨, 저희 잘못인데요. 수리 마치시고 입주민 밴드로 연락 주시면 바로 수리 비용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다행히도 같은 아파트의 입주민이었고, 다행히도 착한 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행인 건, 내 차가 부딪힌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침에 연달아 일어났던 그 사소한 짜증들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저,

또, 하루의 감사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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