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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울기a Apr 10. 2024

야근에 대하여 (일을 꼭 열심히 해야 할까?)

차장님의 조언 EP06

오후 10시쯤

야근을 하다가 잠시 기지개를 키고, 장과장님과 텅 빈 사무실을 보며.     




장과장님, 예전에는 이렇게 야근하는 게 비일비재했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그랬나요?



장과장님


예전에는 훨씬 심했지. 지금도 일을 많이 하는 거긴 하지만, 그때는 강도가 훨씬 심했어. 신입일 때는 오히려 덜 바빴었는데, 사원 말에서 대리 중반까지는 진짜 많이 일했어.     




지금 보면 사무실에 저희만 있는데... 그때는 이 시간에도 빼곡했던 거죠?     



장과장님


꼭 그렇지는 않은데, 지금보다는 많았지. 적어도 나는 계속 바빴던 것 같아. 그런데 웃긴 게, 지금이 더 힘들어.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 줄 알았거든. 지금보다는 아무래도 다들 더 많이 야근했었고, 나도 거기에 맞춰서 따라간 게 있었지.

그리고 나는 차장님이랑 계속 붙어있었잖아. 차장님께서 엄청 빡세게 하니까, 나도 빡세게 할 수밖에 없었어. 아무래도 내가 일을 느리게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도 더 걸리는데, 차장님이 일도 진짜 많이 줬었거든. 그걸 해내려다 보니 회사에 남는 건 당연했고.


차장님께서 맨날 하시던 말씀이 천재와 같은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거야.

무슨 말이냐면 아무래도 천재가 일반인보다 일을 더 빨리 할 거잖아. 천재가 8시간 걸려서 해내는 일이 있으면, 나는 10시간이 걸리든, 12시간이 걸리든, 16시간이 걸리든 천재가 낸 아웃풋과 동일한 아웃풋을 내라는 거야.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차장님은 머리가 엄청 좋으시잖아. 차장님보다 머리도 나쁘고, 경력도 짧은 내가 먼저 퇴근하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항상 차장님보다 늦게 퇴근했지. 중요한 보고 전날에는 새벽 3시까지 일하다가 아침 7시에 다시 출근하는 일도 많았어.





진짜 대단하신 거 같아요. 사실 팀장님도 그렇고, 차장님도 그렇고, 지금 일하는 건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제가 봤을 때 지금도 업무량이 엄청난데, 그럼 도대체 예전에는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신 건지 감이 안 와서요, 좀 궁금했어요.     



장과장님


당시에는 시켜서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일을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도 들어.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차장님께서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나한테 일도 많이 주시다 보니 거기에 맞추느라 참 많이 애썼던 것 같아. 사실 자꾸 일을 시키고 조언을 해주는 건 나를 챙겨주시는 거잖아. 차장님을 따라가다 보니까 지금 내가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있고.     

돌이켜보면 그때의 기억이 제일 선명해. 그때만큼 일을 열심히 해본 적이 없으니까.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기분 좋은 기억이야.




지금 제 또래 친구들은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워라밸이 굉장히 중시되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퇴근시간에 대해 좀 민감한 친구들도 많고요. 제 동기들만 봐도 칼퇴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당연한 게 맞지만, 그럼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거든요. 아니면 정말 천재라서 짧은 시간에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제 연차에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양립할 수 없는 2가지를 욕심내는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하면 동기들 중에서 야근을 제일 많이 하는 건 사실 저거든요. 평소에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동기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오만한거죠. 냉정하게 얘기하면 선배님들의 시선에서는 새발의 피일 수도 있으니까요. 타성에 젖을 때가 많은데, 오늘 과장님 말씀을 들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과장님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사람의 성향 차이도 있지 않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사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스타일이거든. 일이 없을 때 일을 찾아서 혼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런데 마침 나도 시키면 하는 편인데, 일을 많이 주는 상사를 만나게 된 것뿐이지. 나는 다른 사람보다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을 뿐인거고.

이제서야 어느 정도 혼자 일을 해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만약 나 같은 성격이 아니고, 개인의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조직생활 하는데 트러블도 많았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여자친구에게, 오늘의 얘기를 들려줬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여자친구


그런데 나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해. 우리 아버지나 삼촌 세대에는 경기가 좋아서 대부분의 산업이 부흥기를 맞았잖아. 본인이 한 일이 성과로 이어지는데 굉장히 기분 좋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부품으로 취급당하고 쓰임새가 다하면 버려지기 일쑤잖아. 이런 상황에서 지금 세대한테 어떻게 소속감을 요구하고,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이루라고 말할 수 있겠어. 뭔가 지금의 청년들한테 회사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건, 환경도 만들어주지 않은 채 강요만 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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