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월이야. 그것도 2020년. 우리가 처음 만난 2000년대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한데, 시간은 착실히 흘러 이까지 왔구나. 2020년이라는 숫자는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의 시대적 배경으로나 익숙했는데 말이야. 정말 믿을 수 없다, 그치?
2019년은 여러모로 힘든 한 해였어. 개인적으로 해본 적 없던 일에 도전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느낀 탓도 있지. 그러나 나를 더욱 슬프고 분노하게 만든 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때문이었어.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의 비보가 들려왔어. 많은 여성들이 처참함과 절망감, 슬픔과 분노를 한꺼번에 느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단다. 불같이 슬퍼한 우리에게 그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아티스트여서가 아니야. 동시대 여성으로서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모든 것들이 남일 같지 않아서지.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임을 모두가 알고 있어서야.
나는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진작에 써놨던 글을 모두 갈아엎을 수밖에 없었어. 우리의 추억을 곱씹으며 사랑을 서툴게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졌거든.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나에겐 네가 너무나 필요하다는 말을 꼭 해야만 했어. 그러니 우리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자는 다짐을 받아내야만 했지.
우리가 서있는 이곳은 언제 흔들릴지 몰라 불안하고 위태롭기만 해. 하지만 네가 내 손을 잡아준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서있을 수 있었어. 또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어. 그러니 우리, 하나만 약속하자. 서있다가 고꾸라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서로가 잡은 손만큼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말이야. 내 두 손엔 네 손의 온기가 너무나도 필요해.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내가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에 냈던 그림은 식상하게도 해저터널 따위였지. 어린 내가 상상했던 2020년이란 그런 것이었어. 저 깊은 바다 아니면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 도달하는 것이 2020년에 마주할 행복일 거라 생각했지. 어린 내가 있는 과거로 달려가 2020년을 마주한 27살의 내가 간절히 바라는 행복이 그저 앞으로도 너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린 나는 실망할까?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네가 그랬듯 나 역시 네 손을 계속 꽉 잡고 있을게. 그러니 앞으로의 무수한 나날들도 잘 부탁해.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