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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ie Nov 30. 2022

스웨덴의 라곰, 피카, 그리고 스웨덴 게이트

스웨덴 시골 노부부가 알려준 다양한 스웨덴 문화

스웨덴 피카(Fika), 간식 타임이라고?

 피카는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빵과 커피로 휴식을 가지는 시간이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의 사이에.


 스웨덴만의 독특한 문화인 피카는 단순히 출출한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이 의도된 휴식의 핵심은 '대화'에 있다. 일과 관련 없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머릿속을 환기시키고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높이는 시간이다. 혹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내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고의 복지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높은 생산성과 남다른 혁신을 일구어 내는 스웨덴의 힘은 이런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앞서 북유럽의 근간이 개인주의라고 했는데, 이들을 왜 이렇게 자꾸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타가 내어준 피카 타임 빵과 우유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픈 남편을 위해 준비해준 락토프리 우유)


ep1. 독서모임

 늦은 밤, 은은한 조명이 불을 밝히는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니타와 마주쳤다. "내일 있을 독서모임을 위해 책을 읽고 있어. 나는 내일 2시에 집을 나설 예정이야." (시간관념이 명확한 이 사람들. 무계획이 계획인 우리에겐 조금 버겁기도..)


 스웨덴은 독서모임 문화가 매우 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모임들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와 느슨하게 연대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존중하고 협상해나가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활발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진 수도권과 젊은 세대가 이 문화의 중심인 우리와 사뭇 다른 시골 노부부의 일상이었다.

아니타가 앉아 책을 읽던 의자, 그들의 반려묘 시게


talk & talk & talk


ep2. 갈등을 대하는 방식

 함께 아침을 먹으며 노르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니타의 남편 로시가 이런 말을 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의견이 다르면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고 뒤에선 고개를 젓는다니까. 우리는 끝없는 talk & talk & talk를 하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형제국가이면서 역사적 갈등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두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서로를 견제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로시가 말한 'talk & talk & talk..'는 내 마음속 어딘가를 강하게 두드렸다. 갈등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대화. 이상적으로만 생각해오던 이 태도가 이들에게는 당연해 보였다. 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 내내, 두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삶을 사는 스웨덴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더 활발한 소통을 하는 모습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내가 중요한 만큼 너도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첫걸음인 '대화'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타&로시에게 초대받아 구경을 갔던 트로사 마을 주민 축제


스웨덴의 라곰(Lagom), 'Good enough'

 몇 년 전, 『 내 스웨덴 친구들의 행복 : Lagom』이라는 책을 만났다. 스웨덴에 정착하게 된 한 한국인 부부의 이야기인데, '스웨덴 사람들의 라곰스러운 삶'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책을 통한 간접적 경험은 내 가치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래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던 내용이다.

 스웨덴 친구들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밥을 먹으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난 이번에 이 숟가락을 만들었어.", "이 테이블 매트 네가 만든 거야?" 등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트에서 '그냥' 소비를 하기보다는 직접 생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 이들은 물건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고 쉽게 사지도,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채식에 대한 한 스웨덴 친구의 이야기. "절대로 고기를 안 먹는다는 말을 하지는 않아. 우리는 건강한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인생을 즐기고 싶어."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스웨덴 사람들. 일반 음식점들은 물론, 유치원 급식에도 채식 옵션이 있을 정도로 서로의 가치관을 섬세하게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있다. 채식주의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어릴 때에는 부모와 함께 채식 식사를 하지만, 본인만의 주관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본인의 주관은 강하게 가지되, 그것을 상대방에서 강요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Good enough


 소비하는 방식, 가치관을 지키는 방식, 조금은 어설펐지만, 책을 통해 만났던 스웨덴에 대한 첫인상은  특별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이들의 삶을 확실하게 이해시켜준 퍼즐 조각은 아니타 부부가 라곰에 대해 설명한 한 문장에서 찾았다. "라곰은 그냥 Good enough야." 딱 알맞게 행하는 소비, 알맞게 자신의 가치를 견지하는 모습. 그리고 라곰에서 '알맞음'의 기준은 당연히 나 자신이다.




스웨덴 게이트의 전말

 함께 점심을 먹게 된 어느 날. 정확하게 말하면 늦잠을 잔 우리는 아침을, 아니타는 점심을 먹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피카 빵을 내어주곤 샌드위치 한 조각을 자신의 접시에 담던 아니타. 밥 한 공기는 거뜬히 먹는 우리에게는 다소 부족해 보이는 점심이었다. 오늘도 역시 Good Enough 한 스웨덴의 식사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스웨덴 게이트'에 대해 물었다.


 "이건 최근 SNS에서 논란이 된 스웨덴에 대한 일화예요. 스웨덴 사람들은 아들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와도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지 않고,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던데.. 진짜인가요?"


언제나 Good enough 한 스웨덴의 식사량


 우리를 아주 인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겠다며 조금 당황해하던 아니타. 하지만 역시나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가정에 따라 다를 텐데, 그런 집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아마 'Good Enough'에서 비롯된 모습일 거야". 언제나 적당한 소비를 하기 때문에, 늘 꼭 필요한 재료만이 집 냉장고에 준비되어있다고. "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며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야."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약속을 하지 않고 집에 왔다면 시간과 음식을 내어주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누군가 집에 놀러 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을 것을 내어주는 우리에게는 이 대답조차 생소하다. 하지만, 적당한 소비와 나 자신의 시간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스웨덴 게이트의 전말을 조금씩 파헤치고 나니 우리와 다른 그들의 세계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낯선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 그렇다. 처음은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가도 그 속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발견된다. 여행은, 그런 새로운 세계에 잠시 놓이는 시간을 건네준다. 그리고 그 세계에 온전히 놓여본 적 없는 우리는 옳고 그름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름다움을 찾는 시간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오늘은 달달한 간식과 따뜻한 차 한잔으로 피카 타임을 한번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장소도, 간식의 종류도 상관없다. 그저 함께 피카 타임을 가질 상대방 혹은 나 자신과의 휴식을 통해 그를 마주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다. 한층 더 아름다워진 나의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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