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조래빗]에서 발견한 세상에 대한 용기
대형마트에 진열된 물건을 모두 ‘완성품’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필요하다 싶으면 집어서 카트에 넣었고 물건의 결함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의구심 없이 카트에 넣던 물건들이 오래 쓰이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바라보다 자연스레 깨달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서툰 누군가에 의해 탄생하며, ‘완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영화 <조조래빗>의 조조는 2차 세계대전 말기를 사는 10살 난 독일 소년이다. 그는 ‘히틀러’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낼 정도로 독일의 나치즘을 신봉한다. 그에게 히틀러의 모든 말과 행동은 완성된 정답이다.
그토록 선망하던 '히틀러 소년단'에 들어가게 된 어느 날,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히틀러처럼 용맹하게 단번에 목을 비트는 것이 정답이건만, 치기 어린 자신감은 잠시다.
차마 목을 비틀지 못하고 토끼를 놓아주는 선택을 한 조조. 겁쟁이 ‘조조래빗’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조조에게 히틀러의 나치즘은 정답이었을지는 모르나, 자신에게 맞는 답은 아니었던 걸까?
놀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그 앞에, 집 벽장 속에 숨어지내는 유대인 소녀 엘사가 나타난다. 토끼를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조조의 가족은 토끼를 보호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유대인의 생각과 사랑이라는 감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당연하게 믿고 있던 완성된 정답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던 완성된 정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 귀를 연 것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조는 그토록 절친했던 가상의 친구 '히틀러'를 발로 차서 창밖으로 날려버렸다.
당시 사회 구성원들은 아무 의구심 없이 독일이라는 대형마트에서 ‘히틀러’라는 물건을 '완성품'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조차 없는 환경이었지만, 토끼를 죽여야 하는 기형적인 세상을 만든 그 들이었음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조조처럼 다양한 관점에 귀를 열고 기존의 완성품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친절히 흘러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발로 차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일은 평범한 누군가에 의해 탄생한다
어떤 일이든 ‘완성’은 없으며, 의구심을 품은 자의 용기가 만든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우린 언제나 더 나은 최선을 만들 수 있다. 어쨌거나 '완성'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