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Jan 26. 2021

자전거 캠핑을 왜, 어떻게, 어디로?

안녕. 바깥 놀이 이야기를 써 보내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얼마 전, TV에서 1박 2일에 거쳐 52km를 달리는 장면을 보았다. 달리기를 마치고서는 ‘스스로 자부심이 조금 생겼다’며 개운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더라.


달리기는 잘 못 하지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자전거 제주도 일주를 하던 스무 살의 여름이다. 주어진 시간이 이틀뿐이라 자아를 찾기는커녕 기념사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사로잡혔다. 그 마음 덕에 그럭저럭 다음 반년을 잘 버텨낸 것도 같다.

아메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여행한 친구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빵을 삼. 두 끼는 때울 수 있을 듯. 반나절을 달리다가 허기가 몰려와 멈췄는데, 자전거에 매달아 둔 빵 봉지를 열어보니 가루만 남았다. 새가 쪼아 먹은 듯. 화 남. 배도 고픔. 이동 거리 160km. 마트 $15.

그 노트에는 에피소드와 이동 거리 등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모험의 향이 물씬 풍겼다.

이용한 교통수단에 따라 캠핑에는 다른 이름이 붙는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오토 캠핑’,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모토 캠핑’, 또는 ‘바이크 캠핑’, 짐을 등에 매고 걸어가면 ‘백패킹’, 자전거를 타고 가면 당연히 자전거 캠핑이다.

50~100km 정도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야영지가 나오면 짐을 푼다. 쉬고, 먹고, 잔 다음 기력을 찾으면 다음 날 다시 자전거를 탄다. 자동차가 접근이 힘든 곳에도, 걷기엔 무리인 곳까지도 자전거는 찾아갈 수 있다. 덕분에 자전거 캠핑의 루트 선택은 비교적 자유롭다.

아웃도어 활동은 대체로 부지런함이 필수다.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인 다음엔 대체로 ‘아, 잘살고 있군.’이란 성취감이 딸려온다. 자전거 캠핑도 마찬가지다. 내가 달리고 싶은 길을 찾고, 먹고 잘 장소를 고른다. 밥을 지어 먹고 잠자리를 만든 다음엔 다시 내일 루트를 선택하는 일이 낭만적이고 뿌듯한 재미가 있다.

한 번은 열댓 명의 자전거 여행자를 인터뷰해 ‘All that bike camping’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작성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불을 뿜어내는 싱크홀, 물은 물론 쌀까지 얼어붙는 영하 40도의 날씨, 트럭에서 떨어진 양배추를 주워 뜯어 먹으며 달린 길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다 보니 내가 다 자부심이 차올랐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텐트를 친 다음 마시는 시원한 캔 맥주, 오르막길에서 듣곤 했던 노래, 에너지를 내기 위해 꾸역꾸역 먹던 거친 식빵의 질감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엉덩이가 달싹였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이시다 유스케의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찾아 읽었고 여행용 자전거, 자전거 의류, 자전거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와 공방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올해야 뒤늦게 자전거 캠핑을 시작했다.


[1]
자전거는 뭘 타야 해?


정해진 룰은 없다. 여행을 위한 자전거와 자전거 가방이 따로 있지만, 부담스럽다면 백팩을 메도 된다. 지역 안에서 움직인다면 따릉이 같은 공유 자전거도 물론 된다. 가지고 있는 자전거에 짐 가방을 부착할 수 있는 렉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고, 자전거용 트레일러를 부착해 끌고 다녀도 된다.

캠핑에 자주 활용되는 자전거로는 투어링 바이크(Touring Bike)와 산악용 자전거, 로드 자전거, 그리고 접이식 자전거가 있다. 대표적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Bromton)으로 떠나는 캠핑에는 브롬핑이라는 합성어가 있기도 한다. 자전거를 고르는 일은 짐을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여행 기간과 지형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사고 그에 맞춰 여행을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친구를 따라 설리(Surly) 사의 투어링 바이크 롱 하울 트러커를 샀다. 중고 거래를 활용했다.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투어링 바이크는 무거운 짐을 싣고도 고장이 나지 않는 데 집중했다. 사람과 짐의 무게를 모두 합쳐 120-30kg 정도를 태운다. 또한 비상 상황에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정비가 간단하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2]
짐은 뭘 챙겨야 할까?

여행용 자전거에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쌍의 가방이 달리는데, 말에 부착하던 짐바구니의 이름을 그대로 따 패니어(Pannier)라 부른다. 하나당 보통 25L 정도 짐이 실린다. 짐은 먹고, 자기 위한 아이템이면 된다. 추가로 사고를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물건을 챙기면 좋다. 헬멧, 자전거 전조등과 후미등, 휴대용 펌프, 자전거 수리 키트, 고글이나 보호대 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짐의 무게를 줄이게 되어 있다. 기어가 부족한 만큼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게 아웃도어 활동이라면, 챙긴 기어의 무게를 오롯이 느끼게 되는 것이 자전거 캠핑이다. 오르막에서 페달을 밟을 때 그 짐의 무게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런 때는 빠르게 포기하고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기를 선택하는데, 뒤에서 누가 날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다. ‘다음엔 꼭 가볍게!’를 외치고서도 같은 실수는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다.


[3]
루트는 어떻게 짜?

가고 싶은 동네를 정한 다음, 지명 + 캠핑장을 검색한다. 근처에 들릴만한 가게나 볼거리, 반나절짜리 등산 코스도 미리 검색해두면 좋다. 나중에 놓쳤음을 알고 나면 아쉬우니까.

네이버나 카카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자전거 길을 안내한다. 이왕이면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자. 거리를 확인하면서 고도도 체크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너무 많으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힘든 길은 이왕이면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옵션도 있다. ‘점프 뛰기’라 불리는 것으로, 지하철, 버스, 배, 비행기 등 대중교통으로 자전거를 싣고 이동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싣고 다른 도시로 먼저 이동한 다음 거기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숙소를 잡아 자는 등 섞어서 루트를 짜도 좋다.


[4]
주의할 점도 있어?


쉬는 것과 먹는 일에 인색하지 않기!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에 익숙하다. 자전거를 탈 때도 냅다 달리게 된다. 총 거리를 서너 번으로 나눠 어느 지점에서 쉴지를 미리 정해두면 무리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힘들다고 느낄 때 수시로 페달 밟기를 멈추고 물과 간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전거를 타면 허기를 자주 느낀다. 혹독한 날씨나 저조한 컨디션 탓에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의무적으로 먹어야 한다. 에너지가 뚝 떨어져 버리고 나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 테니까. 이는 자전거 여행의 큰 매력이다. 평소 먹고 싶던 음식을 양껏 먹을 기회가 되니까. 칼로리가 부담스러워 피했던 초코바, 젤리, 캐러멜 같은 간식을 챙겨보자. 칼로리가 높을수록 이 여행에선 미덕이 된다. 평소에 입이 짧아 많이 먹지 못한다면 이 여행이 딱이다. 체력 충전을 이유로 꿀떡꿀떡 끝없이 들어갈 거니까.


[5]
그래서, 그게 진짜 재밌을까?

페달을 굴리는 동안 다리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등엔 촉촉하게 땀이 밴다. 요즘 같은 계절엔 귀와 볼도 시리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나면, 하루의 끝엔 땀 냄새도 근육통도 아찔하다. 이동 거리와 루트의 선택 범위는 아득하게 넓고, 움직인 만큼 밥을 고봉으로 먹을 수 있다. 가진 걸 줄이고, 부지런히 달리며, 낯선 동네를 이방인의 눈으로 새롭게 둘러보는 모험 느낌 물씬 풍기는 여행법이다.

여행용 자전거를 샀지만, 일상에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서울에서 지금 내게 가장 자유로운 이동법은 자전거가 되었다. 빠르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고, 운동이 되며, 유지비가 안 들고, 구석구석 다닐 수 있으며 재밌다. 스케이트 보더와의 인터뷰 중, 왜 스케이트를 타냐는 질문에 ‘도심에서 가장 빠르고 쿨한 이동 수단이니까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비슷한 답을 준비해두었는데 누가 나한테도 왜 자전거를 타냐고 물어봐 주길 기다리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저서 <자전거 여행>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고 또 흘러나간다.’ 자전거의 종류나 여행 루트를 말하자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겠지만, 여행은 간단하다. 굳이 길고 험한 곳을 자전거로 넘을 필요는 없다. 그저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구경하다가 맘이 닿으면 안장에서 내려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쉬면 된다. 다음날 또 부지런히 페달을 굴리다 밤이 되면 조용히 캠핑하는 일이 전부다.

이젠 아주 식상하다 못해 지겨워진 마무리 문구지만,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면’ 자전거에 오늘과 내일을 싣고 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최소한의 짐과 걱정만을 자전거에 태울 것이다. 해외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귀여운 포장에 악독한 칼로리를 한 초콜릿을 빼놓지 않고 실어야지.

기사 제보 및 제휴 문의 / hello@the-edit.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