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뚝 ttuk May 19. 2023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공존이

동반성장 하는 나무들의 공존방식


*첨부한 사진들은 모두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글을 쓰는 시점인 5/6일(양력기준)이 입하(立夏)라고 한다. 산과 들에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여름을 알리는 절기 중 하나로 '초여름'을 의미하는 초하(初夏)라고도 불린다.


언젠가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 라디오에서 사연소개 전, 인트로 메세지로 수관기피*라는 단어와 함께 용어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듣는 단어에 내포하고 있는 뜻이 너무 아름다워 그 자리에서 바로 이미지 검색을 통해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었다.



*수관기피: 각 나무들의 가장 윗부분인 수관이 마치 수줍어하듯 서로 닿지 않고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수관은 나무 위쪽의 가지와 잎이 이루는 무더기를 일컫는데, 수관기피는 각각의 나무들이 서로의 수관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무들의 수관과 수관 사이에는 좁은 빈 공간이 생기며, 이에 따라 나무의 아랫부분까지 충분히 햇볕이 닿을 수 있어 동반성장이 가능하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 속에서 앉아 있으면 누군가 나를 지켜주는 듯한 든든함이 느껴진다. 이파리 하나하나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덕분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틈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으로 인해 눈이 부시면 손으로 햇빛 가리개 삼아 가려 보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면서 평온함을 느껴본다.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보면 무성하게 뻗어 나 있는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릴 듯 말 듯 위치하고 있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개개인으로 보면 나이부터 가지의 굵기, 잎사귀의 생김새까지 같은 종(種)이어도 미세하게 차이가 존재한다. 생육연도는 같아도 생장환경에 따라 다르듯 인간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같은 부모아래 태어난 형제들도 각기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던 유년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 풍기는 분위기며 각자의 개성이 더욱 뚜렷해지듯 말이다.


수관기피의 개념을 알게 되고 나서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의 모습들이 새삼 생경하게 다가왔다. 성장 지점이 다른만큼 키가 큰 나무가 키가 작은 나무를 덮을 수도 있고, 너도 나도 우뚝 서겠다고 서로 휘감고 엉킬 만도 한데 나무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고 조그마하게라도 하늘이 보이게끔 공간을 내어준다.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무들을 보며 공존을 배운다. 혼자가 아닌, 서로가 함께 협력하여 동반성장하는 모습이 마치 디스토피아의 현실과 와는 정 반대인 유토피아 세상처럼 느껴진다.



   요즘 뉴스 카테고리 어디를 둘러봐도 어둡고 흉흉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서로 날을 세워가며 상대의 약점을 하나라도 캐내어 헐뜯기 바쁜 사회에서 나를 지켜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벅찰 때는 일부러 자연이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간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속에서 버거워하지만 나름대로의 조율점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 수록,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주변에 자주 하고 다니는 말이 있는데, "난 말이야.. 나중에 미드 <프렌즈>에 나오는 맨션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하고 각자 따로 살되, 매일 자주 모이는게 소원이야."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하는데 아마 이런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무언가 대단한 꿈을 바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들과 재미들을 함께 쌓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세상은 디스토피아이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테고, 그런 우리'들'이 모인다면 어둡고 시꺼먼 배경에 하이얀 색으로 칠하지는 못하더라도 군데군데, 듬성듬성 점이라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점이 커져 선이 되고, 더 나아가 면이 된다면 칠흑같이 어두웠던 배경이 조금씩 환해지는 변화를 기대해본다.



낮과 밤의 잎사귀의 채도가 확실히 다르다.
가로등 불빛에 드리워진 잎사귀들의 색깔은 또다른 느낌이다.

        


나무들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알록달록한 잎사귀들 사이로 햇빛이 통과하여 싱그러운 느낌이라면, 밤에는 가로등 조명에 드리워져 잎사귀 고유의 색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파리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그러데이션처럼 채도가 진해지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고 아무 감흥 없이 지나칠 법한 광경이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가던 발길도 멈추게 하는 묘한 순간들 중 하나이다.



가을에만 만끽할 수 있는 알록달록 단풍들의 향연. 맑은 하늘색 바탕에 무지개 색깔마냥 빨주노초 잎사귀들의 색 조합이 참 아름답다.


무더운 날이 찾아오기 전에 얼른 종종 나가서 걸으면서 나만의 안온한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울창한 숲에 들어가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뭇잎들이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려놓은 물줄기 같은 밑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틈으로 햇볕이 쏟아지기도 하는데요, 이건 나뭇잎들이 쭉쭉 뻗어나가며 자라다가도 다른 나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적당히 움츠리거나 성장을 멈춰서 생기는 수관기피 현상입니다. 주변 나무들이야 어떻든 자신이 가진 영양분만큼 자라나도 될 텐데..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나무들도 충분한 햇볕을 받을 수 있게 다 같이 양보하는 모습이래요. 더 할 수 있음에도 적당한 선에서 멈춰서는 것. 그래서 주변을 살피는 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보다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2022년 2/23일 방송 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