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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08. 2024

<원더랜드> 리뷰

원툴 삼기도 모자란 감성


<원더랜드>

★★


 2011년 <만추> 이후 무려 13년 만에 돌아온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촬영은 2020년에 이루어졌으니 이렇게까지 늦을 작품은 아니었지만, 재촬영과 개봉 연기 등 여러 사연을 거치며 2024년 6월에야 빛을 보게 되었네요. 탕웨이, 수지, 박보검, 최우식, 정유미, 탕준상 등이 이름을 올렸고, 손익분기점이 무려 290만 명으로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려는 바이리, 사고로 누워 있는 남자친구가 보고 싶은 정인 등 사람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원더랜드의 관리자들인 해리와 현수는 사람들이 소중한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아끼는 존재들을 AI로 재현하여 언제 어디서든 얼굴을 바라보며 통화할 수 있는 원더랜드 서비스. 하루하루 AI가 현실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어쩌면 정말로 멀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목소리와 영상을 조합하여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창조하는 기술 또한 조금씩 선을 보이고 있는데, 2020년 이전에 기획되었을 <원더랜드>도 그런 미래를 내다보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소재는 아닙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도 결을 공유하고, 그보다는 덜 알려졌으나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의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또한 유사한 설정에서 출발하죠. 두 영화 모두 AI 시대에만 상상할 수 있을 새로운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데, 소재만 첨단의 것을 차용했을 뿐 대화와 텍스트만으로 상당한 울림을 주는 작품들입니다.


 <원더랜드>도 <원더랜드>만의 설정들을 정립하는 초반부의 몰입은 나쁘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세부 사항들은 딱히 설명해 주지 않는 편이지만, SF 소재를 택했다고 해서 꼭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죠. 이 영화는 사람들의 감정과 사랑을 다루려고 하니 그런 기술이 있고 그런 기술이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만 확실히 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더랜드>는 그것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원더랜드>의 '원더랜드'라는 서비스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떠나간 사람들의 모습과 특징을 되살려 영상 통화를 가능케 하죠. 그런데 원더랜드는 분명 상업적인 서비스고, 얼핏 보아도 어마어마한 자본을 필요로 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AI가 옷이나 차가 필요하다며 소위 말하는 과금 유도를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원더랜드>의 근원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영화는 '원더랜드'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재이자 개념을 파고내려가고 싶은 동시에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둘은 하나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일관성에서 공존할 수 없습니다. 원더랜드 서비스를 소재로 한 오락 영화와, AI와 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드라마 영화 사이에서 명확한 선택을 해야 했죠.



 심지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옴니버스식 구성을 택했습니다. 같은 세계관에서 어느 정도의 연결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바이리-바이지아(그리고 할머니), 정인-태주, 해리-현수, 그리고 기타 등등의 조연들까지 섞은 인간 군상들을 다루려고 하죠. 한 쌍의 인물들만 놓고 보아도 일관적이지 못한 이야기가 여러 개 모여 섞이지 않으니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 더 이상 옴니버스식 구성도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바이리가 되고, 나머지 인물들은 바이리의 이야기에 억지로 한 발씩 얹고 있는 불청객들이 됩니다. 바이리의 이야기에서 만들어지는 감정들은 오로지 바이리의 사례에서만 적용될 수 있기에 정인, 태주, 해리, 현수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은 그저 그 감정들의 하위 호환에 머무르게 되죠.



 다시 보아도 조합과 균형이 너무나 괴상합니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하려면 등장하는 인물상들이 각자의 사연과 구성이 다를지언정 각본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같아야 하죠. 그러나 정인-태주, 해리-현수만 비교해 보아도 정인-태주는 원더랜드 서비스로 묶인 반면 해리-현수의 경우 원더랜드를 이용하는 것은 해리뿐입니다. 올바른 분류는 해리-부모님, 현수-용식이 되어야 맞음에도 영화는 해리-현수를 고수하죠.


 똑같이 원더랜드 사용자들로 묶었다고 해서 제대로 그려진 것도 아닙니다. 바이리 모녀의 이야기는 빠르고 점진적인 반면 정인-태주 커플의 이야기는 동어 반복적이고 느립니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바이리 모녀의 이야기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있어야만 가능한 반면 정인-태주 커플의 이야기는 굳이 원더랜드 없이 시간과 기억, 질병의 영향으로 요동치는 감정선 표현만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라는 문제도 있죠.



 이는 갑자기 AI를 <터미네이터> 쯤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후반부 전개에서 더욱 괴상해집니다. AI로 인한 것들을 이야기하려다가 갑자기 AI 시스템 안쪽은 이렇게 생겼고 이런 것이 가능했다며 상업 영화에서나 할 법한 곳으로 전진하죠. 비유하자면 둘 다 스칼렛 요한슨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녀>에서 <루시>로 점프하는 격입니다. 


 그런 파격적인 전개를 원했다면 정인-태주 커플은 아예 나와서는 안 됐고, 원더랜드 서비스의 내면과 개발 과정을 더 보여주어야 했으며, 성준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생겨나서 다른 AI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드러냈어야 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긴 호흡의 드라마 시리즈를 영화 분량으로 축약한 것처럼 난데없고 서로에게 불필요한 장면이나 설정이 지나치게 많죠.



 급하게 꺼내든 눈물샘 자극 치트키는 소모적이기만 하고,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과도하게 사용된 자본과 CG도 어색하기만 합니다(그것을 충당하려는 상표들의 난립까지 악순환이 됩니다).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되지 않는 것, 그리고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 보여주는 것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겉보기에 예쁘고 한 줄 문장으로 적었을 때 감성적인 단어들에 살이 붙어도 너무 많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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