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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깡 Mar 31. 2022

기분 안 좋은 기습

관계에서의 평정심

육아와 일을 하면서 필라테스 센터에  가입한 지 삼 개월이 넘어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그 강사의 수업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둥이가 나쁜 꿈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엄마 제발 나가지 말라고 울음기가 섞인 얼굴로 애원을 했고 평소보다 피곤함이 배가 들어 보이는 남편은 그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말릴 틈을 엿보지 않았다.


남편의 이런 태도에 가끔은 화가 나지만  이 상태에서 넷이 물고 늘어지다가는 더 좋지 않은 일이 예감되기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집 밖을 나왔다.


요가실에 도착하니 거실 스탠드 조명은 꺼져있고 기구 필라테스 교실에서는 네 명의 수강생이 있었다.

첫 줄 기구에 앉으니 강사가 튜빙밴드의 끝 손잡이 고리를 걸어달라고 했다.

요구사항을 눈치채지 못하자 내 곁에 다가와 대신 고리를 걸어주면서 "이렇게 지각을 하시면 다른 수강생한테 피해를 주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정시간에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지각을 지적당한 이후부터, 무안감이 승모근 통증으로  표출되었다.

수강생의 10분 태만을 공개적으로 지적해도 되는 것인지, 삼 개월 돈을 지불한 곳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게 맞는 것인지 수업 내내 무안감이 희석되지 않았다.


마음이 한창 동동거리고 나서야 기억 창고에서 하나의 날이 떠올랐다.


어느 날과도 같은 아침 풍경이겠지만, 그날은 불안이 더 높이 날아올랐던 것 같다.


어린이집 교실 앞에서 등원을 거부하는 아이들의 등을 거칠게 밀고 꺼저버린 한숨을 쉬던 날 둥이는 나란히 오줌을 질려버렸다.

가슴 언저리께가 따끔해지면서도 마음이 휘청거려 소리를 질러버렸다.


둥이도 무안했던 걸까?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추궁하 듯 달려드는 엄마의 성난 소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가 없어 오줌 싼 것일까?

엄마의 불안한 마음이 엄마와 비슷이 유전되었을 둥이의 얼굴을 떠오르니 필라테스를 하는 내내 눈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세상이라는 완전체'는 좀 불안스러워도, 혹은 모가 났다 해도, 끌어안아주고 따스하게 사랑한다 속삭여주면 나름 평안한 주파수로 돌아온다.


친정아버지가 암말기로 투병할 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걸 알고 많이 험악하셨다.

인생은 살아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며 돌도 안 된 둥이를 보며 한탄하셨다.

누구라도 죽는 게 확실하니 인생은 비극이 맞지만, 아빠가 있어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음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내가 천천히 노력하고 있는 세상을 둥이한테도 가르쳐주고 싶다.

"세상이 비극으로 보이는 날도 있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해지는 순간이 더 많을거야. 우리는 세상을 감당 할 수 있고 그 이겨냄은 나로부터 시작함을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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