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 생각보다 강하다고 믿어요
함께 다큐를 만들었던 친구와의 취중진담 토크. "예전에는 떠나버린 친구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별 생각이 들지 않아. 그게 그 친구들의 일생에선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고, 내가 그 친구들이었더라도 그렇게 선택했을 거야. 그리고 마찬가지로 너네가 나였어도 끝까지 했을걸." 이 작업이 영화로서는, 또 사회적 영향력으로서는, 완성도로서는, 세 가지 관점으로 본다면 아쉬운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우리 다큐를 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내게 조곤조곤해주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게 이 다큐의 매력이라면 매력, 미덕이라면 미덕이 아닐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자기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면, 나름의 힘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적어도 이 열한 명, 나까지 열두 명의 삶은 이 다큐가 그들의 삶에 결정적이진 않았을 수 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삶에 대해 고민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거면, 꽤나 큰 수확이 아닐까. 만들고 싶었던 게 영화였다면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는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을 해냈던 건 아닐까.
그때 작업을 하면서 마음에 참 많이 남았던 말이 있다. 그래서 참 자주 생각하기도 하는 말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삶이 완전히 뒤바뀌어 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기억이란 이 사람들과 우리가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업일 거라고 했다.
거의 좌우명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그래서 준비했고 기획했고 실행했다.
고3, 다큐의 마무리는 기약 없고 입시로도 다들 바쁘고 지칠 때. 보통 우리는 내 삶이 내 힘에 너무 부치면 내 이야기를 하는데 남은 에너지마저 써버리곤 한다. 그 작은 에너지로 우리가 좀 더 하나로 된 연결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이 보다 가깝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교에서 함께 연극 <기억여행>을 보자고 기획했다. 사실은 이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점점 살이 붙고 화색이 돌더니... 노래 선물을 준비하고, 합창단을 모으고, 어머님들과 스태프분들께 저녁식사를 만들어 대접하고, 대본을 받아 한글자막을 만들어 송출하고, 수어통역사를 섭외해 수어통역으로도 진행하게 됐다. '우리'가 나아가 진정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과 기획이 더 큰 '우리'를 만들 수 있게 해 줬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뭐 하나는 포기해야 했을 때에도, 자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가며 그것들을 온전하게 만들어냈었다.
새로운 작업을 올해 초, 작년 말이었나. 또 새로 시작했었다. 세월호 10주기 문화예술 공모사업. 이번엔 내가 주축이 된 건 아니고, 연극 연출을 배우고 있는 친구가 주가 되었다. 이런저런 고민과 노력, 시간의 무게를 견딘 끝에... 돌아오는 금토일,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린다.
전에 모르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소중한 마음들을 많이 찾았던 것 같다. 우리는 자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감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수개월 간 함께 부대끼며 이런저런 작업을 함께해 온 우리는, 내일이면 첫 공연을 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을 기억한다.
참사 이후 삶이 뒤바뀐 사람은 유가족만이 아닐 것이다. 모두들 어떤 시점 이후로 삶이 조금씩 바뀐다. 우리가 '연극'('다큐'라고 적어도 되겠다.)이라는 아주 멋진 것을 만들(려 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단순히 그것보다는 더 멋진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어쩌면 '연극'이라는 것의 매력일 수도 있고 말이다.
단순 메이킹 영상이라기엔 조금 길지만, 그래도 연극을 만드는 그간의 과정과 마음들을 담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