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론 스무 살.
노화가 두렵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벌써 무슨 노화 이야기를 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새 노화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노화는 자주 내 생각의 일부를 차지했다. 가볍게는, 전철에서 '저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버젓이 빈 노약자석을 놔두고 일반석에 앉을까' 하는 것부터, 만원 지하철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는 사람들도 보통은 나이가 드신 분들이었다. 그렇게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나 먼저 나오겠다고 서 있는 사람들을 무작정 밀치고 일단 저부터 내리겠다고 우격다짐을 하는 사람들도. 피곤에 절어 있는 젊은 사람을 꾸짖으며 "늙은 사람이 이렇게 서 있는데 왜 일어나지 않느냐"라고 다그치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주로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을 보며 괜히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의 '늙어감'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는 아직도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이 여전히 많다. 어떤 교수가 강연에서 말하길, 사춘기는 나와 타인을 인식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니까 '상상적 관중', '개인적 우화' 같은 태도도 드러나고...) 사춘기를 잘 지나면 이제 건강하게, 나와 타인을 분리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여직 나는 유아적인 태도에서 벗아나지 못한 것들도 많다. 어떤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질투도 그렇고,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머리로는 '어휴 쪼잔해'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퍽 대단한 일들을 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은 가치 있고 옳았으면 좋겠다. 정의로운 일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겐 유아적인 영웅심리 같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타박하지 마세요.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실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고, 누구도 전능할 수 없고,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정의롭다는 건 없다는 걸. 대단한 마음을 갖고 시작한 사람들은 쉽게 나가떨어지고,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남아 어떤 일들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마음이 아니라 아주 작고 겉보기엔 보잘것없는 마음으로 일들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나는 아직 내 신체적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랑 첫 만남에 척지는 법은 눈 이야기를 꺼내는 거다. 나는 초3 때 내게 "너 눈 병신이야?"라고 말한 학교 형을 여직 기억한다. 다니기 싫은 학교를 꾸역꾸역 버티다가 뛰쳐나온 것도 다같이 별 보러 가서 “너가 인내하지 않아서 밤하늘의 별이 안 보인다."라고 말한 선생님 때문이었다. 어디 연수원에서 잠깐 알바를 하며 지낼 때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다 버텼는데 "너는 언제든지 눈이 멀 수 있으니까 눈을 감고 생활하는 법을 배워야 돼." 따위 말을 듣고 박차고 나왔다. "눈이 안 보이니까 그럴 수 있지" 따위의 말도 싫어한다. (나는 눈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거거든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자기 생각을 표현한답시고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써넣는다면 별점을 낮게 준다. 아무리 좋은 마음에서 기획한 행사일지라도, 불을 꺼야만 완성된다면 나는 싫다. 당신들만의 세상이다. 당신들만의 천국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십에 지나지 않아서 툭툭 내뱉는 말들이, 안경을 쓴 것도 이제 18년 째지만 적응이 안 된다. 못 웃어넘긴다.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참 멋있다.'라고 평가되는 게 싫었다. 나는 그게 안 되니까일 수도 있다. 근데, 나의 표면적인 불편함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쯤이야 뭐' 하고 쉽게 넘겨버리는 걸 나는 못 두고 보겠다. 표면적인 불편함을 넘어 겪어온 차별과 배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이 '겨우 그것 가지고 그러냐' 하는 것들이 정말, 싫다.
영화를 이제 하나 만들었고, 또 다른 영화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눈을 계속 써야 하는 나로서는 눈이 참 소중한데, 눈은 내 마음을 잘 따라주지 않는다. 오른쪽 눈은 백내장이 이미 심해져서 수술을 하면 백 프로, 합병증이 온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눈에도 백내장이 시작됐다. 어느 날, 이어폰을 낀 뒤로부터는 한쪽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더 이상 영화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온몸이 신호를 주는구나.
어쩌다 만난 사람들로부터 '이 일에 관심 있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요동쳤다. 저 일은 그래도 눈이 덜 부담되지 않을까. 나중에 눈이 멀어도 저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러면서도 확신이 안 섰다. 나는 영화를 하고 싶은 건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영화보다도 사회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건가. 참 딱한 사정의 영화계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입지를 넓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 확신이 안 섰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스물한 살이라는 내 나이를 들을 때마다, "참 좋겠다. 뭐든 해볼 수 있겠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동의를 못 하겠다. 어쩌면 그저 사초생의 반항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리 오래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푸념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는데도,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이 자기 이야기를 해 줬다. 자기는 요즘 노안이 오는데, 그게 참 두렵더라. 얇은 지갑에... 안 좋아지는 눈에 맞춰 매번 안경을 바꾸지도 못해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더 눈이 안 좋아지더라. 이제 돈을 조금 받아서 주말에 안경을 새로 맞추려 하는데, 그러면서도 사실 얼마 안 있으면 안경을 또 새로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본인의 노화가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운데, 한창때의 내가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이. 참. 고민이 많이 되겠다고.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어느샌가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신체적 변화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이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노인의 억셈이 노욕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당장의 내 불편과 불안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다큐를 만들며 삶과 죽음과 상실과 애도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지만 역시 머리로 생각해보기만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외면과 침묵이 참 원망스러웠는데, 사실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건네는 말들은 외면과 침묵보다 못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 모든 일들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내 주위의 누군가가 병환으로 아파할 때에 나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아플 때 정말 외로웠다. 누구도 아픔을 단번에 낫게 해 주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플 때 괜히 할 말을 찾기 위해 꺼내는 말들이 싫었다. 그래서 말들을 건네지 못했다. 이것마저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꺼내는 말들이 괜히 꺼내는 말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진로를 고민하는 글입니다. 나갈 진, 길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고민들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