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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덕업일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요즘 학부모들은 예전과 달라진 느낌이 든다.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적어주는 직업도 다양해졌으며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열이 높은 동네는 예전과 다를 바 없다. 그곳의 학부모들은 여전히 사교육에 관심이 높고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쉴틈 없는 삶의 계획을 다 마련해놓고 초, 분 단위로 생각하며 자녀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실제로 그렇다. 내 학창 시절과 현재의 교육계는 거의 바뀐 것이 없다. 여건이 되는 부모들은 최단기간에 우수한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자녀를 압박한다. 그리고 여건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부모들도 그들을 힘겹게 따라잡으며 단 하나의 인생 경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길을 자녀가 쫓아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지만 그들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영어는 해야 되며, 아무리 못해도 학교 수업은 따라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한다. 결국 부모님은 모두 한 마음이다.


 모두가 좋은 대학과 직장을 바라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기득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그리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입시 경쟁을 택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택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사실에는 주목하기를 꺼려한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삶의 행복 또는 윤택함이 성적순으로만 결정되지 않고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며, 학창 시절엔 형편없던 친구가 성공하거나 잘 나가는 사례들도 보게 되지만 예외적인 사례로 생각하거나 그들이 잘 나가는 이유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공부를 잘해서 남들보다 월등히 앞서가거나, 학창 시절 성적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 앞서가는 사람들의 수는 비슷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이 우선이며 입시 관문을 뚫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온 경험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성적이 우수하여 덕을 본 사람은 당연하게 우수한 사례를 전이시키고 싶어 한다. 또 대부분의 상대적 패배자들도 성적에 맞춰 인생이 재단되었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은 하지 못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학창 시절에 공부를 좀 더 잘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교육관은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내 자녀만큼은 공부를 통해 부모 이상의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길 원한다.


 나 또한 입시만 바라보고 입시만 생각하며 살았다. 아마 교사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벌써부터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영어유치원을 생각하고 좋은 학군으로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되면서 교육계에 발을 깊게 들이밀게 되었고, 아들은 좀 다르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부를 잘해서 잘 살 확률에 도전하기보단 자신만의 길을 찾게 하고, 잘 풀린다면 성적에 관계없이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기르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공부를 잘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좋은 대학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은 보통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계획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은 대학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교육에 관심을 줄이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성적을 받아서 잘 사는 것과 성적에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잘 사는 것이 확률적으로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만큼이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잘 살게 만드는 노력이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들처럼 선행학습을 시키고 시험을 잘 치게 만드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해진 답을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맞추는 공부법은 누구에게나 시킬 수는 있지만 아들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하여 적절한 진로를 택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주어진 정답이 없으며 아들도, 우리 부부도 언제쯤 정답을 찾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몇 가지는 알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뢰하는 기존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는 아들의 정신 상태를 온전히 보존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과 비교하고 몇 가지 과목에 한정하여 시험을 통해 우위에 서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세계에서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마음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명문학군 부모님 못지않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멀리 보고, 조급해하지 않도록 알려주고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호기심을 갖고 몰입하는 순간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기록으로 남겨두고 아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아들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시도가 중요하다. 이것 또한 일종의 시험이다. 보통 시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해진 틀이 없고 삶의 한 부분에서 포착되는 우수한 점 또는 가능성이 보이는 점을 분석하고 자연스레 더 깊거나, 높거나, 다양한 세계로 연결 지어서 직업 수준의 세계로 다가가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기다림이다. 기존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적이 형편없더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진 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질 때를 우선 기다려주고, 좋아하는 것이 직업, 또는 대학 등과 연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고 힘든 단계라고 생각한다.


 말은 길게 했지만 결국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내재적 동기가 살아 숨 쉬면서 성장하게 기르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시쳇말로 하자면 덕업 일치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닌가 한다.


 결코 외로운 선택은 아니다. 패스트 팔로워로 우리나라가 유명한 이유는 현재 교육 시스템이 낳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 패스트 팔로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입시경쟁으로만 달려가는 와중에도 남들과 다르게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거나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발자취를 가진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있어서 초, 중, 고, 대학, 취업의 단일경로는 언제든 자신의 목표와 어긋난다면 과감히 중단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게다가 세계도 변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교육, 다양한 강의 수강 시스템이 활발히 늘어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교육의 경로가 다변화하고 있다.


 또한 협업 네트워크, 재택근무,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직이 더 늘어나고 강요되는 사회가 되어가며 학력이 다가 아니라 찾고자 하는 직업 또는 직무에 적합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이력으로 평생 쌓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 세상은 하나의 길을 따라 모든 사람이 걸어가고 남들을 앞서야 하는 경쟁 사회가 아니고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역량을 스스로 향상해나가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으면 살기 힘들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추세에 아들을 맡겨보려고 한다.


 물론 남들이 시키는 일을 빠르게,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나 자신만의 일을 스스로 택하나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대다수의 인생이며 어느 분야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분야에서 소득이나 여러 조건에서 남들보다 좋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조금은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고, 같이 이야기해주고, 느긋하게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서 나보다 행복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할 일은 제법 이룬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성적, 좋은 학력이 아닌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도록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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