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편하고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발견하라
2020년 12월-
(나는 무엇인가 중요한 일들을 항상 12월에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인생을 밝혀주었던 책, 감동에 잠을 못 이루었거나,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거나, 부여잡고 엉엉 울었거나, 책이 풀어낸 감정에 이입당해 나를 여실히 드러냈던 기억을 엮어두었던 그러한 추억의 책들이 있다면..... 흔쾌히 기부를 부탁드려요라는 어려운 컨셉의 '브랜드'를 정중히 만들었다. 기부받은 책들을 모아 큐레이션을 하여 새로운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면, 그 노력에 결실을 맺을 감동이야말로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누군가의 인생과 감동을 매우 어렵게 나누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대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가장 불편하고 아날로그적인 방법
바로, 북어게인이다.
책이 타인에게 입양되어 그들이 그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최초 기부자의 의도와 경험이 전이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판매'와 '이윤'을 고심하고 만든 프로세스가 아닌 만큼, 책 상태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의 줄과, 형광펜, 종이접기(페이지를 접어놓은 방법도 가지가지)의 비주얼이 만연할 테다.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북어게인은 그러한 마구잡이식 중고책 상태 n'import quoi (불어로 '헛소리하지 마', '말도 안 됩니다'라는 의미지만, '아무거나 상관없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지')를 넘어선 궁극적인 발견, '상관없어, 진짜는 어차피 다 보여. 쎄라비, 남뽁뜨꾸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한다.
북어게인을 론칭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활발히 소통하고 있고, 온라인 북어게인 북커버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우리가 하는 일들에 대한 작은 기쁨을 나누는 중이다. 꼭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이목을 끌 만한 일들을 기획한다거나, 매출이 발생한다.. 등의 뻔한 이벤트는 모두 내려놓았다(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직장인 만랩처럼 하고 있으니).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돈이 들더라도 해보자, 돈을 써서 해보자(아주 많이 필요한 광고 같은 예산 투입 말고), 시간을 정중하게 투자해보자(내가 스스로 하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예의랄까) 다각도로 고민했다. 미생으로서 그리고 꿈꾸는 자의 소소한 저녁은, 북어게인을 꼬물꼬물 만져보고 느끼는 일에 진심으로 집중했다.
북어게인이 집중하는 일은 아래와 같다. 물론 미로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두 성향이 만나 한 경향성을 설정하는 과도기에 있으며, 다행히 현재까지는 큰 이슈없이 아주 슬로우하고 부드럽게 잘 안착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발견한 내가 참 행운이고, 파트너인 미로에게 고맙고 또 우리의 시간에 감사하고 존중할 것, 내가 매일 아침 미로를 찾는 마음가짐이다. 쨋든, 아래의 순서에 따라 북어게인이 조금씩 더 구체화가 되고 있다.
주체적인 노력이야말로 아주 고귀한 열정이 담길 것이 팔 할이다. 어차피 우리는 제한된 시간에 일을 한다. 사랑을 하고, 인생을 산다. 난 어떤 노력을 하고 싶을까? 나는 우선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매년, 매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묻고 조언하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솔직해지자. '네가 뭔 상관이야?'가 목까지 올라와도 타이틀에 맞는 품위스러운 답변을 해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속내에 타협하지 않는 일이 이번의 노력의 전부이길 바랐다. '요새 저는....' 따위의 미사여구도 섞지 말고, 자기 합리화도 내려놓고. 이것이 나의 펀더멘탈이었다. 내 부서의 일은 이래서, 내 역할은 이래서, 우리 선임이 이래 왔기 때문에, 사람이 적어서, 리더가 그러라 하니, 통념상, 문화상, 분위기상, 트렌드상..... 아주 지긋지긋한 변명이 내게도 무수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프로젝트를 아주 작게 시작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하겠어!'라는 아주 뾰족한 날이 생겼고, 뾰족하지만 겉으로는 매우 둥근 칼을 갖는 노력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고객 리텐션, 재구매, CAC, LTV 말고 '우리의 당신'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경북에 사는 당신, 인천에 사는 당신, 부산의 당신, 서울의 당신. 전국구로 사실 미세입자처럼 존재하는 당신을 잡기란 쉽지 않다. 안 보인다. 팩트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알까. 여기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가 당신을 모른다는 사실은 또 제법 부정한다. 사회적 커리어로 쌓은 기만을 모두 내려놓고 내 부족함, 모름, 어설픔 그러나 진심, 사랑, 노력 등에 대해 '진정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를 만들어도 진정으로, 너무 절상/절하하지 않기, 우리가 제품을 만든다면 원부자재의 원가와 공임, 브랜딩을 위한 노력까지 정량으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컨텐츠를 만든다면 모토에 걸맞은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잔잔한 공감 능력이 가장 먼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브랜드인지, 서비스인지, 플랫폼인지, 오퍼상인지 무엇이 되려는지 지켜보는 나를, 아직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나는 '모른다'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거나 껄끄럽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가 무궁무진하다는) 자랑이다. 우리의 캐릭터가 아직 규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여러 색을 상상한다. 다만, 갑자기 블루가 핑크가 되거나, 블랙이 화이트가 되어서는 안 되고, 안정감을 주는 선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색을 스을쩍 입혀보아야 한다. 우리가 정의한 색은 '아날로그', 이 아날로그라는 결이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날로그스러운 방식과 뉘앙스, 담아내는 컬러와 어울리는 기법으로 무장시켜보는 거다. 갑자기 중고책을 e-book까지 접수한다거나, 유저가 영감을 받은 부분만 캡처해서 데이터를 모은다거나 또 어딘가는 존재할 무수한 디지털 솔루션을 모두 접고, 닫고, 봉쇄하자. 무엇이든 간편하고 빠르고 쉬운 저절로의 디지털은 모두 배제하기로 했다. 북어게인에 중고책을 기부하려면 우선은 링크로 등록을 해야 하고, 회신을 받아야 하며, 본인이 직접 포장하고, 택배 서비스를 예약하고, 사비를 들여 발송해야 하는 극강의 번거로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사람들이 한다
B.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C. 게다가, 브랜드를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감동받아 매일 고마워할 일이 생기기도 하더라
라는 레슨을 얻었다.
"어느 해 겨울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독자 간담회를 열었다. 매주 우리 잡지를 챙겨 본다는 고마운 독자 분이 계셔서, "저희가 A님 같은 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을 읽었을 때 어디다 감상을 남기세요?"라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속에 담아요." 그랬더니 반대편에 앉아있던 분이 수줍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는 일기장에 적어 둬요." 아아. 일기장과 마음. 너무나 종이 독자다운 감성이라 자리에 있던 모두가 머쓱하게 웃었던 게 기억이 난다." 출처 - 김혜원 에세이 [작은 기쁨 채집 생활] 중
[작은 기쁨 채집 생활]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아. 일기장과 마음.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박장대소를 했다. 현재 우리의 상황과 비슷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향성을 모아 작고 느린 거북이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결국 경북에 사는 당신, 인천에 사는 당신, 부산의 당신, 서울의 당신.... 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내 마음은 머쓱함을 넘어 진심으로 평화로워졌다.
아주 작은 것부터 우리의 경향성이 내재된 우리만의 DNA로 우리의 성격을 조금씩 보여주는 거다. 우리가 마주할 사람은 친구나 가족이 아닌, '세상'이기에, 마구잡이로 성격을 부리거나 난동을 피우거나 과다하게 솔직해지는 모든 호기로운 행동이 결국 risk로 발현될 수 있으므로, 아주 조금씩 보여주기를 권장한다. 이건 성향 차이인 듯하고, 여기서 경향성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이유이다.
A. 북어게인 제품을 만들기: 고객 혹은 유저와의 '관계' 형성에는 매개체가 있으면 좋다. 우리의 서비스 혹은 프로덕트로 고객과의 접점 포인트를 준비하자. 미로와 나는 '북커버'라는 매개체를 숱한 제품들 사이에서 우리의 코어 프로덕트로 설정했고, 북커버를 통해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첫 단추를 끼웠다.
B. 하고 싶은 말을 살짝 시작해보기:
- 소중한 책과 함께하는, 나만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북커버
> 이리저리 휘둘렸던 지난 날들, 모두 다 품어줄게요
>> 책과 함께라면, 당신의 기억과 시간은 매우 특별해요
>>> 당신이 기억하는 가치가 지속 가능하도록.... 북어게인
우리가 발신하는 뉘앙스는 비교적 간단했다. '토닥토닥'이 처음과 끝에 항상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마워요, 토닥토닥>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토닥토닥> <누군가는 분명 감동받을 거예요, 토닥토닥> <북어게인을 만들어주셔서 너무 좋아요, 토닥토닥> 우리의 메시지는 소수이기는 하나. 결국 유저에게 도달되었고 우리를 응원한다 혹은 이런 브랜드가 생겨서 너무 좋다는 찬사와 같은 DM을 받게 되었다. (이건 정말 너무 기쁜 일이었다!)
C. 하고 싶은 말에 반응한 사람들에게 작은 마음을 전달하기: 우리는 책을 기부하지는 않았으나 (책을 기부한 분들께는 북커버 30% 할인권을 제공한다) 사연을 들려준 진심의 멋진 분들을 위해 어떠한 선물이 좋을까 고민했다. '돈을 써서 해보자!'가 초심에 있었지만, 잔고도 보아가며 품목이 결정되었으므로 아주 작은 선물이지만, 받았을 때 찰나의 순간이라도 '오!' 혹은 '흐..!' 할만한 선물들을 고민했다. 결국, '책'을 읽는 우리를 위한 북 카드(책갈피), 노트할 연필, 직접 메모가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한 포스트잇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스티커' 들을 소량으로 제작했다.
D. 우리가 진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선물이라더니 별거 아님' 혹은 '마케팅 일환'이라고 단 1초라도 생각이 들까 노심초사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준비했어요....! 우리 잘했죠?'라고 혹여나 비칠까 제작에서 발송까지 지금도 고전하고 있다. 모두 소량으로 우선 제작해서 너무 성의 없는 물건이 아닌지 더블 체크했고, 발송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우체통에 넣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표를 제작했다. 이러한 수고와 시간들이 합쳐져 '우리는 진심입니다'라고 꼭 전달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E) 솔직하기. 부족함을 알리고, 보완할 것을 약속하기
생각보다 우리들은(2021년,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될 누군가들이여) 브랜드가 인간미를 지닐 때 다가가고 싶기 마련이다. 지금은 모든 것과, 자연과 환경과 가치와도 소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론칭 후 몇 개월이 채 안된 우리는 메인 컨셉인 중고책에 대한 '스토리'와 이를 서포트 할 '시스템'이 부족하고, 게다가 아직 정확히 무엇이 더 부족한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부족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답을 함께 찾아 나아가 보고 싶다고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예정이다. 보완을 향한 느리고 더딘 북어게인만의 발걸음을 공개적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매우 흔들린다. 너무 많은 레퍼런스를 보고, 너무 많은 조언을 듣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한두 번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기록한 이러한 브런치 등에 낱낱이 적힌 나의 초심을 다시 학습하는 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귀찮고 부끄럽지만, 굳이 시간과 공을 들여 기록함으로 인해 결국 내가 얻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스스로의 confidence가 될지도 모르겠다.
애써 어렵게 만든다는 것. 누군가는 우리의 여정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하려는 것들은 애써 어려운 것들 투성이다. 우체통은 왜 이리 모두 사라졌는지, 작은 마음을 담아 준비한 우리의 키트가 우표만 붙여놓고 발송되지 못한 채 며칠을 가방에서 나와 함께 체류하고 고민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 책 작은 기쁨 채집 생활에 등장한 종이 잡지를 읽는 사람, 그리고 우체통이 없으면 마냥 길을 걸어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조금 더 걸어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