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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미소 Jan 08. 2021

'앞과 뒤'가 꼭 같아야 할까요?

진실을 찾아내고, 구해서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하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연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편리한 여가인 미디어 시청! 가족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온 연령대를 커버하는 가족 영화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억압되는 한글과 독립정신을 전하기 위해 사전을 만드는 조선어학회의 이야기였어요. 구슬픈 역사에 분통이 터지고, 우리말을 지켜내는 과정이 소소한 감동과 감사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조금 더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신념이 확고한 소수의 보통 사람들이 일궈내고 변화시키는 이야기였다는 점이에요.



신뢰와 믿음을 모으는 이야기


지키고자 하는, 혹은 이뤄내고자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계층도 직업도 출신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서로를 지탱하는 진실된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보여준 영화라서 더 좋았어요. 극 중에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이 심부름꾼 김판수의 면면을 오해해서 일어나는 몇 가지 해프닝이 있는데요. 그것들을 보며 사람에 대한 내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고, 지난 시간 겪었던 이런저런 기억들이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관계들을 맺으며 나 스스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돼요. 가면이 몇 개씩 있고 앞뒤 다를 때도 너무 많았지요.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저 세상 이야기였어요. 내가 지향하는 어떤 가치나 생각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세상이더라고요. 하다못해 내 수면시간 조차도 지켜내기 어려운걸요? (요즘 일찍 자는 습관을 들이려 하는데, 유튜브를 보다 보니 그만...)


언행일치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언행일치를 몸소 보여주는 분들에게 깊은 존경심이 생겨요. 제 친구 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까지 하는 언니가 있어요. 우리는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많이 달라요. 그녀는 배움을 몸으로 실천하고 소신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텀블러 없이는 카페를 아예 이용하지 않고요. 불편부당한 것이 있으면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 선에서 예의 있게 이야기하고, 논란이 생긴 이슈에 관한 제품들이나 브랜드가 생기면 본인이 '직접' 찾아본 뒤에 보이콧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해요.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한 뒤에 결정해요. 오래 본 사이인데 예전부터 그래 왔어요. 소소하게 꺼내놓는 그녀의 챌린지들을 들으면 괜스레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덩달아 얻게 되는 정보들도 많습니다. 저는 두어 달에 한번(?) 정도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편협했던 나를 반성하고 그녀의 깊은 공감에 감사를 보내요. 늘 각성하게 해 줍니다.


진실함의 가치


짧게 스쳐 지나갔던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실 성격도 그렇고 취향이 같건, 다르건 별로 상관없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얼마나 진실되었는지가 관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관계건, 연인관계건, 조직에서의 관계건 말이에요. 진실하게 대하는 사람은 진실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에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반대도 같다고 생각돼요. 시행착오가 쌓이면 더욱 -!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앞과 뒤가 다른 모습, 거짓된 모습과 논란으로 공분을 샀던 여러 셀럽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이 뉘앙스를 표현할 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진실에 집중하고 싶어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 소통이 부쩍 많아졌어요. 온라인도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진실이 과대 포장된 뉴스를 비롯한 이야기들, 맥락 없는 대화들, 갈 길을 잃은 콘텐츠와 여러 댓글들까지. 언택트 공간 속에서 만나는 일방적이거나, 공감대 없는 이야기, 설득력 없는 내용들을 보고 피로감이 부쩍 커지는 요즘이에요.



요즘 말로 '어그로'라고 하는 식의 이목 끌기 낚시성 콘텐츠들은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언어와 비언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대면소통에 비해서 이미지와 텍스트로 도구가 엄청나게 축소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편리할 때도 많지만, 감성과 분위기, 그리고 환경과 맥락에서 오는 감각과 직관적인 대면 소통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제대로 '잘' 알고 있는지, 찾아보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찌 보면 계속 학습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요? 내 주관에 알맞은(?) 혹은 지향하는 진실에 계속 다가가는, 혹은 멀어지지 않으려는 작업이지 않나 싶습니다. 과함과 담백함 사이의 진심을 보여주고 또 읽어내기 위해 어떤 기준을 가지며, 어떻게 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는 요즘입니다.




-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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