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그는 주로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한마디로 몹쓸 병에 걸려
현대 의학에 절망하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 치료법
무속이며 주술까지 붙들었던 차였다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살림과 육아, 돈벌이를 홀로 감당했던 그녀도
늘 피곤하고 아팠다
앓는 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실은
그녀가 아픈 줄 몰랐다
저녁마다
땡땡 부은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대하면서도
약국 아저씨가 우리를 단골 대접할만치
ㅅ리돈을 사나르면서도
둔감하고 무심했다
'그가 아프다'는
대전제 아래
그녀의 고통은 사그라졌다
내 고통도, 나보다 두 살 어린 아이의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인식에서 그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이 아픈 건 아픈 게 아니었다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되었다
'얜 아프지 않아. 건강해'
그녀가 자랑처럼 한 말
그건 사실이라기보다
간절한 바람에 가까웠다
내가 아픈 건 아픈 게 아니었고
난 아프면 안 되는 아이 었으니
중학생 때
지금 돌아보면 독감이었던 거 같다
방에서 나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그만 쓰러졌다
화장실 가려다가
순간 정신을 잃고 퍽 떨어졌다
지척에 그녀가 있었는데
엄청난 힐난과 함께 일어났다
서러운 것도 몰랐다
아픈 건 원래 그런 거였다
아프면 언제라도
거적때기에 돌돌 말려
내던져질 거라는 자각만이 의식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런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가족 중 누가 아프다고 하면
화부터 난다 굉장히 깊은 데서부터 올라온다
병 걸림에 대한
내 분노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혹시나 해결할 실마리라도 잡지 않을까 해서
나보다 두 살 어린 아이가 아프다
게으르고 사치하고 양극단을 오가며
부딪히는 게 다 그 질병의 증상이란다
연락 끊은 지 꽤 됐다
화난 건가
실망스러운 거 같기도 하다
조금 배신감도 들고
위로한답시고
공감 안 되는 거 숨겨가며
자주 끊기는 맥 빠지는 대화
억지로 끌어갈 능력이 없다
잔소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하는 거
화내는 것도
건강한 사람에게나 할 수 있다
병자와는
다투는 게 아니다
증상이 나오는 걸 두고 혼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질환이 있다는 게
인정이 된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인들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고
아픈 거 조금이라도 나눠질 거 아니면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겠다
물론 내 맘도
다독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