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민트 May 27. 2022

우도땅콩 바나나 셰이크

설탕 충만한 휴식


아이 학원 넣고 나서

장보고 나니 20분이 남았다.


20분이라.

카페에 앉아있기는 짧은 시간이나

장거리로 가득한 가방을 지고 그 일대를 배회하기에는 무쟈게 긴 시간.


궁상떨지 말고

카페에서 20분 대기하기로 했다.




'20분 카페 휴식'

내 사전에 '사치'라고 뜬다.


아이 간식 사먹이느라

내 욕구는 날마다 가슴 밖을 나와 보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라들곤 했는데


극단은 극단과 통하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단 20분이라도

내 미각이 흡족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단백질 맛으로 충만하게, 20분을 꽉꽉 채우고 싶은 욕망이 스윽 올라왔다.



 

우도땅콩 바나나 셰이크를 주문했다.


사실 그동안 한 시간 머물면서 아메리카노도  편히 먹지 못했는데, 지금 시간이 얼마 없는 이 상황에 명칭부터 비싼 '우도땅콩 바나나 셰이크'라니. 제정신이 아니다.


게다가 달게 뻔하다. 단백질이라기보다 진한 설탕 맛이 날 텐데.


바로 후회했다.

단백질 보충을 원했다면 라떼를 마시거나 집에서 무첨가 두유나 먹을 일이지. 어쩌자고 셰이크를.




사치스런 우도땅콩 바나나 셰이크를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아메리카노를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쨌건 난 오늘 20분간 설탕 가득한 휴식을 한껏 즐길 작정이다.


마침 길가 맞은편 편의점 벤치에 삼삼오오 노동자들이

노곤한 몸 빨래 널듯 오월 볕 아래 비스듬히 걸터앉았다. 근처 공사장 인부 혹은 배달 기사들이다.


남루한 옷차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손엔 캔음료 다른 한 손엔 담배. 쳐다보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리를 두 칸 옮겼다. 그렇다. 들쩍 지근 인공향 섞인 담배 냄새는 그들을 피할 좋은 구실이다. 마스크도 벗었는데 불쾌한 냄새와 함께, 간만의 설탕 맛나는 휴식을 찝찝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20분이, 우도땅콩 바나나 셰이크가 너무 아까웠다.



공기가 이렇게 맑았던가.

얼마 만에 마스크 벗고

카페에 앉아 단 음료를 홀짝이고 있는지.


역시 달다.

두 입인가 맛보고는 바로

아이가 좋아할 맛이니 테이크아웃 컵에 담을 걸 그랬다 싶었다.

그런데 점점 목에 쩍쩍 붙듯 들어간다.


설탕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음료 한 잔이 바닥을 보인다.

시야 한켠 거슬렸던 아저씨들도 사라졌다.


설탕 충만한 20분

휴식다운 휴식이었다. 뭔가 배부른 느낌이 거북하지만 후회하지 않으련다. 내일 다시 아메리카노를 들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적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