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사람이 있어도 보지 않는다. 인사하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얼굴 언저리에 잠시 시선을 뒀다 거둘 뿐. 말을 할 땐 꼭 필요한 용건만 교환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 사람의 표정이, 생활이, 삶이 보일 때가 있다.
보인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일하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 비 맞으며 자리 지키고 있는 교통 봉사 할머니. 이미 다 젖은 채 화단 잔디 깎는 인부들... 비 오면 젖는 사람들. '아이고, 비 맞아서 어떡해요.''우산 어딨어요?''젖지 마세요. 감기 걸릴라.' 내 말 한마디로 잠시 마음 녹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아는데. 너무 바쁘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가지치기하듯 눈망울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자극을 쳐내야 겨우 우선순위 목록에 오른 과제를 처리할 수 있다. 대출금 상환, 관리비 납부, 보험료 입금, 교육비 결제, 생필품 구매... 운 좋으면 자기 전 잠시 숨 돌릴 여유를 가질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보고 있으나 닫힌 눈이다.
기계가 되는 편이 낫다.
마음 쓸 필요 없이 일만 하면 되니까.
아무리 빨라도 계산기보다 신속할 수 없고
정확하다고하지만 컴퓨터보다 완벽할 수 없다.
똑똑한 것으로는 알파고를 당할 수 없다.
그래 봐야 기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는 지금으로선 사무적인 인간이 되는 게 최선이라고 되뇌며 눈을 닫고. 어디론가 총총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