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민트 Apr 24. 2022

에고이스트

히스테릭한 그녀를 위한 변명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아이 낳으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했지만

천만에. 엄마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대할 수 있었지?

이 예쁜 애를 어떻게 하면... '


엄마는, 나의 부모는 나를 원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때는 용어조차도 생소했지만

돌아보면 내 유년 경험은 요즘 말로 학대에 해당한다.


어린 동생과 집에 남겨져 한나절 넘게 과자만 주워 먹다 울었다던가

파리채로, 구둣 주걱으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별의별 이유로 두들겨 맞았다던가

뜨거운 물 목욕 거부하면 여지없이 떨어지던 매운 손바닥 눈 꼭 감고 견뎠던 일들


'한 문제에 한 대야.'

매를 들고 선 엄마가 화장실 간 사이 벌벌 떨며 손가락 발가락까지 세어 필사적으로 계산 문제 답을 적어내던 기억. 서울대 가지도 못할 거 뭐하러 그 고생했나 싶다.


가끔 한글 가르친답시고 아이를 잡고 앉은 내게서 그때 그녀의 알싸한 공기를 맡을 때가 있다. 소름 끼치게도, 뱃속 깊숙이 자리한 내장 지방처럼 너무나 둔한 자각이다. 정신 차려야지.

   



그녀는 신경질적이었다. 사소한 일에 화를 폭발하기 일쑤였다. 과자 부스러기 흘렸다고 혼나는 게 흔한 일이었으니. 아니, 웨하스 먹는데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았기에 어쩌면 지금 내가 완벽주의자로 완성되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날마다 실수하는 보통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쉬이 혐오하는 외톨이 기도 하고.


어느 날은 흠씬 두들겨 맞고 나서 빵과 우유를 받았다. 하얀 백설기 빵을 꾸역꾸역 삼키며 흐느끼며 자꾸 메이는 목을 우유로 축였다. 속죄 의식이라도 되는 건가. 백설기로 두부로 하얀 케이크로 죄를 씻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거늘. 난 빵조각과 함께 모멸감을 씹어 넘겼다.

   


생신이라고 연락 왔다.

눈치가 뻔한데도 슬쩍 '그날 갈까?' 물었다.

'오긴 뭐하러 와' 하는데 돈을 부쳐달라는 말로 들렸다.


사실 그 편이 낫다.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시답잖은 일로 다투어 얼굴 붉히고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


그런데 그 편리한 돈마저도 아까웠다.


품질은 고만고만하면서도 가장 저렴한 선물로 때우는 게

적당히 의례를 해치우면서도 가슴 한편이 흡족한 길이었다.

  


사랑이 뭘까.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던데

난 아직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 알지는 못한다.


한 철 사로잡는 호감이

온 신경을 달구는 열정이 사랑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시시한 건지 혹은 위대한 건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남자와 다퉜다.


이 세상 단 한 사람에게조차

사랑받고 존중받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깨닫는다.


엄마로부터, 유년시절 기억으로부터 도피처가 결혼이었는데

그 도피처가 또 다른 가학의 장이 될지 미처 몰랐다.


아내이고 싶지 않다.


아내라는 신분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여자'라면

난 평생 '여자 친구'로 살고프다. 어떤 남자든, 여자 친구에게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깍듯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누구 아내라고 하면 속으로 비웃는 버릇이 생겼다.

산뜻한 척 웃는 낯에 누추한 실상이 훤히 비치는 듯해서. 화사한 메이크업으로 덮이지 않는 비천한 삶, 아내란 자리.

 



'재계약하지 않겠어.'

'당신은 해고야'라고 수십 번도 더 외쳤건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내게 너무 늦었다고 한다. 결혼이 종신 노예계약은 아닌데.


우선순위는 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엄마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아내가 마땅히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아내란 사람에게도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내가 욕구와 필요가 있는 인격적인 존재임은 망각하거나 외면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그것을 끊임없이 채우길 요구한다.


그러나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것이다. 헌신하지 않으면서 헌신을 기대하고, 사랑을 심지 않고서도 사랑이 맺히길 바라는 건 비이성적이다.




남자가 새 일을 시작하면서 내 오후 시간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가 그 시간에 아이를 봐줄 수 없으니 내가 글 쓰고 운동할 시간을 꼼짝없이 잃게 생겼다.

혹시 방과 후 수업을 들을 의사가 있는지 아이에게 먼저 물었다.

 

어차피 학원에 보내거나 집에서 한글 영어 등 가르쳐야 하는데, 일단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면 그런 교육 부담을 덜고 나도 내 일과를 지속할 수 있다. 놀랍게도 남자는 그것을 이기심으로 규정했다. 나의 사적 활동을 지키려는 노력이 매우 역겹다면서 비난했다. 대체. 당신은 왜. 갈수록 낯설다. 내가 결혼한 이 남자.  

  

그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아이를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 않단다. 엄마가 자리를 대체해줘야 한단다. 하지만 그 하해와 같은 계산에 여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없다. 여자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아내를 본인의 자식 사랑을 실현할 도구로서만 인식하고 대하는 건 아주 잘못된 일이다.

나도 물론 아이를 사랑하지만, 날 이렇게 무시하는 남자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여자의 시간을, 꿈을 향한 노력을 이해하거나 지지하기는커녕, 가정에 해악 한 것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탄압하는 행태가 몹시 실망스럽다.




'에고이스트.'

벙벙한 내 얼굴에 대고 그가 토하듯 내뱉은 말.

이기주의자라고? 대체 누가 에고이스트란 건지.


근데 맘에 든다. 비루한 아내보단 차라리 욕먹어도 에고이스트가 낫지.  

적어도 남 탓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평생 지난 삶을 한탄하며 원망하며 살지는 않을 테니까.


'여자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에고이스트'라도 하련다.



그래, 나 에고이스트니까

더는 내게 젖은 양말 같은 아내의 삶을 강요하지 말라고!




그런데

만약에

그녀가 에고이스트였다면 어땠을까.

  

사랑은 희생이라고, 힘없이 풀린 눈을 비비며 말했던

자기 삶을 아픈 남편과 두 아이를 위해 통째로 바쳤던 그 여자, 엄마.


돌아보면, 그녀의 짜증과 분노는 이유 있었다.


대기업 다니던 멀쩡한 남편이 갑자기 병 걸리고. 직장 잃고.

먹고살겠다고 나서다 사기당해. 재산 날리고. 병원비로 가세 기울고.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생활환경 나빠지고.

밖에 나가 일하고. 들어와서 살림하니. 몸은 지치고. 마음은 힘들고..


두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들이 예뻐 보였을까.

짐처럼 느껴졌겠지. 아니, 아주 무거운 짐이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시켜보겠다고 그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거다.

비록 거칠고 극단적이었지만 매를 들고서라도 강행해야 했다.

기다려주고 반복해서 알려줄 물리적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체력도 없었기에.




기댈 곳 없던 그녀는 투사처럼 혼자 싸워나갔다.


남편은 들것에 아이들은 수레에 싣고

너무 무거워 질질 끌다 쓰러지면 뺨을 때려서라도 다 같이

벅찬 시련을 헤치며 고난의 강을 건너고자 했다. 그렇게 젊음을 다 털어쓰고  이제는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가 폭발했던 것은 그녀를 누른 삶의 무게가 그만큼 컸던 탓이리라.


조금만 덜 희생했더라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어줬더라면


엄마가 에고이스트였다면


엄마도

나도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이제 와 부질없는 소리지만.




남자 생일에 모처럼 홍대에 갔다.

바에 갔는데 댄스 동호회 행사가 있었다.

살사와 탱고 음악이 번갈아 나오고

음악이 바뀔 때마다 각 동호회 사람들이 나와 춤을 췄다.

우리도 그 사이에 껴서 주춤주춤 흔드는데


왜 하필 그 여자가 내 눈에 띄었을까.

40대 정도 되었을, 간부급 직장인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성이 춤을 추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쌍꺼풀 없는 고운 눈매, 달처럼 말간 낯빛이

꼭 내 엄마, 젊은 시절의 엄마와 똑 닮아 눈을 뗄 수 없었다.


12시 넘은 시각

싸이키델릭한 조명 아래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쾌활하게 춤추는 사람들 사이-

비현실적인 시공간에서  생각했다.


'엄마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금요일 밤에 나와 저렇게 춤도 추고 살았을지 몰라.'

 



'흑흑흑..'


새벽에 기도하고 들어와서도

내 머리맡에서 한참을 울며 신께 매달렸던. 엄마.

엄마가 몰고 온 찬 새벽 공기에 잠이 깨었다가

기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들곤 했다.


그녀의 눈물은 당연한 거였고

고통과 헌신, 희생도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엄마에게는 최대의 위기이고 비상이었지만 나에게는 기본값이었다.

'불안한' '기울어진' '부족한' 모든 것이 내가 경험한 세상의 전부였다. 슬프게도. 그래서 어쩌면 엄마의 패닉을 더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더욱 외로웠을 거다. 딸조차도 그녀를 헤아리지 못했으니.

사실 그 난리통에도 불구하고 곧 균형을 잡고 안정을 유지했던 건 엄마라는 여자의 투쟁 덕분이었는데.




엄마는 괴물이 아니었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자기 삶을 제물로 던져 견디는 것밖에 없었던 연약한 여성이었다는 걸.

오늘 몸을 던지고도 내일 또 몸을 던져야 했던, 끝이 보이지 않는 매우 위태로운 나날이었다는 걸.   


에고이스트가 되고 보니 알겠다.



엄마에게,


비록 아직 가슴에 거리낌이 있어

감히 실행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홀로 받아내느라

풍비박산 난 집안 수습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알아드려야지.


반찬 챙겨주고

옷 싸주고

이따금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엄마에게,


준비되지 않은 날벼락맞고

그만하면 훌륭하게 살아왔다고 위로해드려야지.


엄마에게서... 좋은 것도 받았겠지.

받은 좋은 것들 세어보고 감사해야지.


그리고 말씀드려야지.


우리 남은 생은 에고이스트로 살아요.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