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민트 Feb 21. 2024

하극상이라고

상처 입은 장유유서

아시안컵 축구 4강 경기 전날 저녁

대표팀 선수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 '하극상’이라는 표현을 썼고

온라인 공간 여기저기서 하극상이라며 들썩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이 사건은 이미 하극상 사건이었다.


'하극상이라고…?'

무시무시한 패륜의 어감을 담고 있는 ‘하극상’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을 무시하고 윗사람을 꺾고 오름(표준국어대사전)

-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부당한 방법으로 윗사람을 꺾어 누르거나 없앰.(고려대한국어대사전)

-       아래가 위를 이긴다는 뜻으로 계급이나 신분이 아래인 사람이 윗사람의 지위와 세력에 대항하고 올라서는 경우 (두산백과)


15-16세기 일본 전국시대 지방관과 지방 호족무사 계층 등이 세력을 키워 영주가 되고 지역국가를 세워 지배 구조가 변화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라는데.  


지금이 계급사회도 아니고

돈과 실력 앞에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가 무색해진 시대

'막내온탑''막내형님'같은 신조어가 유행하는 마당에

하극상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분개하는 건 좀 어색한 감이 있다.

 

사진출처-뉴스1


조직 논리로서 하극상

하극상 얘기는 주로 군 경험 있는 군사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군대는 계급이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축구는 왕왕 군대 용어로 묘사된다.


요르단전, 도쿄대첩, 태극전사, 용병 등. 그렇다면 축구팀에도 계급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감독, 코치, 주장으로 이어지는. 이래서 이번에 불거진 사태에 대해 ‘하극상’이란 표현이 가능했으리라.

수개월 전 유튜브 유명 코미디쇼에서 ‘축구 잘하면 형’이란 말에 ‘그럼 형이라고 부르라’며 웃음으로 넘겼던 그 선수가 공교롭게도 이번 하극상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다.


월등한 실력으로 주목받는 신예 선수와 불미스러운 마찰을 빚었는데, 많은 이들이 신예 선수에게 ‘형 말을 듣지 않았다’ 지적했다. 선수 본인 역시 처음 사과문에서 ‘앞장서 형들 말을 들었어야 했다’ 거나 ‘형들을 도와 잘하겠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돈과 실력이 나이보다 중시되는 요즘 시대에 단지 ‘연장자에게 대들었다’는 장유유서에 기반한 질책은 논리가 빈약하다.  


덮어놓고 ‘감히 형에게 대들어?’가 아닌 ‘조직의 지위 체계를 무시했다’’조직 내 서열 상위의 정당한 지시를 거부했다’’조직 내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등 조직 논리에 기반한 비판이 좀 더 설득력 있다.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우리가 전쟁에 비유하는 경기 전날 공적인 업무 수행 기간이었으니, 지시 불응과 돌출 행동에 비판의 소지가 있다는 데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국인의 장유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스캔들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다름 아닌 장유유서 관념과 섞여 더욱 파급력이 있다.

‘형에게 감히…’로 시작하는 탄식을 그저 촌스럽다 쉬쉬하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인에게 장유유서 뿌리는 사실 매우 단단하고 깊어서 장유유서를 인정하지 않고 이번 사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장유유서는 한국인의 내면화된 도덕률로, 사회생활 기초이자 대인관계 규칙으로 작용한다.   

     

장유유서를 잘못 이해하고 악용하는 예가 적지 않지만

정상적인 가정과 집단에서는 기본적으로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에게 공손하다’는 개념의 장유유서를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배운다.  


따라서 우리가 ‘하극상’이라며 부들부들 떨 때는 단순한 질서 위반이나 다툼에서 오는 불쾌가 아닌, 한층 더한 슬픔과 서러움이 배어난다.  


흔히 ‘A는 나의 동생이자 친구이며 후배이자 동료입니다.’라고 할 때 갖는 다층적인 감정을 떠올려보라.  


상처 입은 장유유서

우리는 상처 입었다. 동료 동기일 뿐 아니라 ‘동생’으로 여기고 한층 더 돌본 마음에 부상당했다. 손가락만 다친 게 아니다. 권위와 체면이 부러졌다.


더 이상 연장자란 이유만으로 존대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려서부터 배운  형/언니라는 자각으로 먼저 베푼 호의와 책임감이 보기 좋게 능멸 당했다.


소문처럼 실제 주먹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그 이상 다쳤다는 거다.


우리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점잖게 조직 논리로 비판했거나 ‘하극상’이라고 침 튀기며 화냈거나, 어느 쪽이든 속으로는 한참 더 아파하고 있었던 게 확실하다.  


어쩌면 한때 날 아프게 했던 몇몇 동생 얼굴이 스치고, 과거 어느 시점 그 누군가에게 역시 시건방진 동생이었던 나 자신이 떠올라 잠시 손가락을 매만지는 이도 있었을 게다.       


사진 출처- 뉴스1

치유하고 회복하려면

‘그래도 우리나라 대표팀에는 규율이 필요하다’던가

‘우리 대표팀에는 아직 카리스마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부족하다.


시대 분위기에 맞지 않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의식 때문인지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우리가 세대 간 갈등을 봉합하고 진정한 회복과 화해의 길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한국인 특유 장유유서 관념의 상처를 다뤄야 한다.

 

조직 논리에 더하여 장유유서 관념의 상처도 반드시 짚어서, 성숙한 한국인이 상대를 존중하는 규율로서 ‘장유유서’의 가치를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손흥민 sns 2024.2.21

마침 오늘 오전 해당 선수가 사과하고 선배 선수가 받아줬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그는 두 번째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우리가 아팠던 '장유유서'정서에 대한 이해와 사의를 담고 있어 고무적이다.


시일이 꽤 지난 만큼 숙고하여 갈등 빚은 선배 선수뿐 아니라 대중의 마음 달랠 방도를 잘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얼얼하긴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듯,

상처 입은 마음이 잘  우리 사회 세대 간

더욱 신뢰 깊은 건강한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