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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압도되어 사는 사람들

이해되지 않는 극단의 감정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습니다.

어린시절 저희 집은 이해할수 없는 감정의 경험이 많았습니다. 둘째형이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부모 자식간에 무슨 대화가 필요하냐고 하면서 소리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습니다. 아버지의 요지는 부모 자식간에 대화를 하지 않아도 다 알수 있는데 무슨 대화가 필요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는 내용이었는데, 그것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답변을 하는 어투도 거칠었습니다. 욕을 하면서 화를 내고 극단의 감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둘째형의 요청은 자연스러운 요청이었고, 당연히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할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장 상식적인 요청도 이해할수 없는 감정적 반응을 동반한 아버지의 답변으로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 자식간의 관계패턴은 한번이 아니라 사실 일평생 계속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때 이러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대화라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너무 어려서 분위기 파악을 잘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하게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지속된 대화 패턴에서 아버지는 그저 자식들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기를 바라는듯 했습니다. 어느날은 저희 삼형제가 잘 시간에 떠든다는 이유로, 저희 삼형제를 속옷 바람에 겨울인데 바깥으로 내쫒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감정 반응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어떤 인과 관계를 찾아내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이 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많이 있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저는 그 감정적 두려움을 피해서 집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존재로 살았습니다. 이러한 존재를 가족심리학에서는 잃어버린 아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합니다. 골든차일드, 희생양자녀, 잃어버린자녀 등으로 역기능적인 가족의 아이들을 분류하는데 저의 경우는 희생양자녀와 잃어버린자녀의 특성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대학교를 타지로 가면서, 혼자남은 저는 집에서 저의 방에 처박혀서 나가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결국 그것은 저의 일반적인 삶의 패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자체를 잊어버렸습니다. 


그 혼자만의 삶은 지독하게도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을 마음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지옥과도 같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과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수 있는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을때도 별다른 인생의 목표나 즐거움을 느낄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내면에 있는 고통은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추가적인 스트레스와 어려운 상황을 제가 소화하기는 벅찼습니다. 결국 저는 감정적으로 폭발해버렸습니다. 어쩌면 그때까지 버틴것만 해도 기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린시절까지 돌아가서 저의 삶을 돌아보아야만 했습니다. 저의 삶이 왜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삶이 안정이 되고 정착이 되어서 원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것 같은데, 점점더 저의 삶은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로 시작해서 저의 삶 전체를 다시 돌아보아야만 했습니다. 결국은 저의 가정과 양육과정 그리고 그동안 제가 살아왔던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재양육(reparent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해서 생긴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이제 성인이 된 자신이 자신의 내면아이를 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도 읽고 상담도 받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힘들면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먼길을 돌아왔지만, 어쩌면 이러한 경험이 저에게는 필요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는 더이상 혼자 자신만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 나와서 건강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아픔도 나누면서 성장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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