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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

두려움의 느낌을 벗어나서, 현실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는 것,

한참동안이나 글을 쓸수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그동안 글을 쓸수 있었던 동력원이 사라진 것 처럼, 아무런 글에 대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마치 새하얀 벽을 마주한것 같았습니다. 한참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분노에 싸인 언어와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는 집안의 공기는 무겁게 저의 마음을 짖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극도로 민감한 저에게는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저의 피부에 지속적으로 생체기를 내고 그 상처 사이로 피가 스며드는 섬뜩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한 느낌은 저에게는 견딜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에서 유일하게 벗어나는 길은 아마도 자신을 현실의 감각에서 마비시키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 되면, 그 현실을 마주하고 온전하게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나의 관심이나 나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들고 더이상 견디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들면 도망갔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무의식 수준에서 벌어지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보다는 나만의 세계에 살아가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그래서 혼자있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나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내가 요구하는 것들을 이야기 할수 있었는데도 그러한 것들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관계만을 상상하며 힘든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이지 어리석음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저는 성장이 멈추어버렸습니다. 결국은 나이만 들어갔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몸만 자란 것입니다. 


누구나 어린시절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가 어느정도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신이 환상속에 살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서 현실을 마주하는 시기가 오게됩니다. 그러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환상이 어느정도 현실에서 작동을 하게 되면, 환상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 살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삶이 힘들었지만, 어느정도까지는 살아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환상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더이상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견딜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저는 주저앉고 말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됩니다. 왜 내 자신이 정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지 이해할수 없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책과 삶에서 찾은 실마리를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심각한 수준으로 얽혀있는 삶의 실타래를 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연구결과와 경험들 그리고 도움이 되는 모임들은 그 혼돈의 시간과 괴로움의 시간을 견딜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제는 저의 경험에 대해서 다른 분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행사가 끝난 이후에 또 알수 없는 면도칼로 나를 상처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저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나면, 가끔 이러한 고통이 느껴질때가 있었는데, 어제 또 그 고통이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한참동안이나 그 고통이 떠나지 않아서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그 고통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제 발표 내용중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반응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그런 고통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은 이러한 감정적 고통과 불안도 과거의 경험으로 조건화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고통이 심하고 불안해서 다시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조건화된 트라우마의 기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도 이런 트라우마의 파편들이 삶의 곳곳에 박혀있다가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튀어나와서 저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린시절 만들어진 환상의 잔재들이 삶의 곳곳에서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저같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되면서, 그래도 회복을 향해서 포기하지 않고 힘겨운 한걸음을 걸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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