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날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기 전날은 설레임으로 가득참니다. 낯선곳에 맛있는 김밥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같이 간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더 먼곳으로 여행을 더나기도 합니다. 대학시절 동기들과 같이 호남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갔던 지리산 MT는 30년도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리산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먹었던 라면의 따뜻한 국물맛을 아직도 저의 몸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에게 여행은 그렇게 따뜻한 과거의 기억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과거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기대감이 넘치게 됩니다. 지난 여름에는 한국에 방문해서 아들과 함께 무등산, 지리산, 그리고 월출산을 찾아갔습니다. 아들놈이 아직도 그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들과 월출산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배경사진으로 올려놓은 것을 보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 여행은 이렇게 기대되고 즐거운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마음 여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정보도 없이 그 여행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눈덮인 지리산 정상에 여름옷만 입은채로 아무 장비도 없이 서있는 모습이랄까요.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장비가 부족한지도 알지 못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도 모른채, 눈덮인 지리산 정상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왜 제가 그곳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움직이긴 해야겠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저는 마음 여행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저의 상황을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건 꿈일거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제가 경험하고 있던 고통들은 현실이었습니다. 마음의 견딜수 없는 두려움, 수치심, 그리고 분노등의 감정은 모두 실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은 자신을 들여다 보라고 저를 추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어떻게 마음을 볼수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본다라는 개념은 저에게 낯선 개념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참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혼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서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죽을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현실인식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 없이라도 움직여야 했습니다. 적어도 바람과 눈을 피할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하면 바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마음 여행은 그렇게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알수없는 힘에 의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까지는 제가 어떤 여행을 할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인식도 없었고, 제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시도를 했던것 같습니다. 심리학 책과 다양한 자기개발 서적을 읽기도 하고, 매주 등산을 하면서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하고, 단기선교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콜롬비아의 국경지역에 있는 자치구를 찾기도 하고, 페루의 낯선 도시를 찾아가기도 하고, 필라델피아의 저소득층 지역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윗빠사나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10일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이태리 시골 공항에서 처음보는 사람과 제가 읽고있는 책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포옹을 하기도 하고, 센트럴 파크에서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격려의 말을 듣기고 했으며, 심리학을 공부하고 정신건강 상담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세우기 워크샵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저의 내면에 얽히고 섥힌 감정의 매듭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북클럽을 인도하면서 같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떠밀려서 마음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떠밀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마음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편안한 상황에 있으려고 하지, 불편하고 힘든 자리에 나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떠밀려서 시작한 마음 여행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측면에 대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행이 변화무쌍하고 그 깊이를 다 알수 없을만큼 심오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원하지 않은 여행이지만, 이제는 어린시절 소풍가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조금씩 마음여행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아직 서툴지만, 앞으로 어떤 마음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