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많고 안 통쾌한 복수]
복수극이지만 그다지 성공한 복수는 아니다. 상황에 떠밀려 겨우 실행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애썼지만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일은 몹시 더디다. 메데이아도, 엘렉트라도 증오 다음은 모조리 복수였고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햄릿은 글쎄, 증오 다음 또 증오였고 또 증오였다.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도모하기까지 그냥 산다. 음모에 휘말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서야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어쩌면 그가 여태 두려워해 온 죽음이 용기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햄릿은 “죽는 것은 잠드는 것-그뿐”이라고 말했으나 잠든 후에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몰라 망설인다. “두려움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알지 못하는 저세상의 것을 향해 날아가기보다 차라리 겪고 있는 괴로움을 견디게 만든다.”라고 말하며 삶을 산다.
어떤 사람은 온몸으로 배신을 느끼지만 떠밀리지 않으면 복수를 실행하기 어렵다. 다른 어떤 사람은 망설임 없이 살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배신당하고 증오에 휩싸였을 때 난 복수를 계획했나.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준 사람이 안에 들어있던 지갑 속 모든 것을 훔쳐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를 그저 미워만 했다. 내가 그를 신고하고 처벌을 받게 하는 상황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거기에 통쾌하고 행복한 나는 없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햄릿은 어땠을까. 그 또한 참을지 싸울지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괴로워 자기의 죽음까지도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복수를 계획하기 이전에 고민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복수를 생각하지만 방법은 찾지 않았다. 방법을 찾는 사람은 배신자였다. 왕은 햄릿이 더 이상 자기 손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자 그를 살해할 음모를 가차 없이 꾸민다. 그는 햄릿과 완전히 다르다. 없이는 못 살 것 같다던 배우자 거트루드의 자식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욕망이 곧 자신이다.
햄릿이 보통 사람인 걸까. 그의 복수는 어딘지 찝찝하고 얻어걸린 것 같다. 그의 복수는 왕의 욕망을 멈추었으나 그것은 결과일 뿐이다. 보통 사람의 복수는 이런 법일까. 통쾌한 구석이라고는 없다.
아버지 죽음 이후 햄릿의 삶은 미움과 증오와 외면의 연속이다. 그가 가장 먼저 미워한 사람은 재혼한 어머니이고 가장 먼저 외면한 사람은 사랑한다고 번번이 고백했던 오필리어다. 햄릿은 복수는 느리지만 증오와 외면은 몹시 빠르다. 햄릿이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괴로워하다가 끝내 그의 독배를 대신 마시고 죽는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있다. 햄릿은 거트루드와 더 많이 대화했어야 했다. 그가 너무 미워도 멋대로 편협하게 그를 재단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필리어를 이렇게나 쉽고 빠르고 단순하게 배신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햄릿은 사랑한다고 애절하게 고백했던 오필리어를 버리고 그의 아버지마저 칼로 찔러 죽인다. 남의 아버지를 죽여 놓고 사과와 애도 또한 직접 전하지 않는다. 오필리어는 끝내 제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모르는 채 강에 빠져 죽는다.
오필리어의 사랑에는 유독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아버지, 왕, 왕비 모두 그와 햄릿의 관계를 눈여겨본다. 숨어서 지켜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햄릿의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고 하고, 나중에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가 미친 거라고 말한다. 더 나중에는 당사자인 햄릿의 증오에 희생당한다. 왕비를 향한 미움은 왕비에게 그치지 않고 오필리어와의 관계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가차 없이 버려지는 오필리어는 불쌍하다. 똑같이 아버지를 살해당했으나 진실을 알리는 유령도 나타나지 않고, 누구도 그의 광증을 햄릿의 그것처럼 중요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안쓰러워할 뿐이다. 물에 빠져 죽는 그는 그때까지 햄릿을 사랑했을까. 제발 아니기를, 햄릿을 증오하다 죽었기를 바란다. 애처로운 사랑이 그 생의 상징이 되지 않았으면. 안티고네처럼 일어나 맥베스 부인처럼 욕망을 좇았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 그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는 걸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어떤 인물들의 서사를 궁금해하고 비틀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과 해석이 제대로 된 것인지 멋대로 된 것인지 알지 못해서 부끄러운 부담을 안고 글을 적어 내려간다. 대 작가의 대작을 배경지식 없이 읽는 일은 이런 것일까. 오늘도 보잘것없는 나의 조그만 호기심과 욕망은 여기에 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