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담은 의심]
희원은 이천 구 년에 용산구 이촌동에 살았다. 그리고 ‘통근’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통근 길에 그의 눈에 보이던 것들을 적고 후반부에는 사라진 것들을 적었다.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고도 적었다. 글이 발표된 곳은 대학교에서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수업의 강의실이었다. 그가 묘사한 동네가 용산임을 학생들이 알게 되자 강의실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폭력적인 시위가 문제였다는 한 학생의 말에 다른 학생이 반박했다. 저항, 잔인함 등의 단어가 들어간 말이었다. 희원이 빙빙 돌려가며 말한 것을 그 학생은 안 돌리고 한 번에 내뱉었다. 희원을 외로움을 덜었고 자기의 비겁함을 응시했다. 다른 어떤 학생은 희원이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글을 썼다고도 말했다. 희원은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보이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감상적이라거나 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 일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강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도 말했다. 희원의 글을 두고 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희원과 함께 수치스러웠다. 나도 그런 적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희원과 강사의 관계에 관한 기억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여러 사건들과 더불어 젠더 불평등, 사회구조적 위계, 여성 연대, 공감 등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시선은 희원의 수치심에 줄곧 머물렀다. 나는 내가 입장을 갖지 않는 것을 두고, 관조하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내 입장을 밝히지 않아도 나의 삶을 통해 그것이 드러나리라고 생각했다. 속 깊숙이에서는 나의 입장을 내세웠을 때 듣게 될 말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의 글들은 자주 완곡했다. 일부러 그렇게 썼다. 그것은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이었을까. 나는 부끄러웠다.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감정에 관해 깊이 서술하고 부드러운 표현들을 찾았다. 그것은 순응주의였을까. 글쓰기가 의심하는 행위라면 나는 강력하게 의심하고 싶다. 은근하게 의심하고 싶다. 그런데 들을 말을 안 두려워하고 쓰려면 얼마만큼 용감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나의 눈으로 의심을 하고 남의 눈을 빌려 의심을 하다 보면 그만큼의 용기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희원은 수업을 들으면서 그가 젊은 여성 강사가 아니었더라면 겪지 않았을, 혹은 정교수였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강사와 차를 마시면서 그 말을 한다. 강사는 한참을 고민하다 자기도 안다고 말한다. “난 희원씨가...”라고 말하고 망설이다 버스에 올라타버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그가 겪은 무례와 부당함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말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두는 일은 자존심이었을까. 사실을 사실로 두지 않고 물음을 가지는 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강사는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희원에게 등불을 든 앞선 사람이다. 하지만 학계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사라진 빛이었다. 훗날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 희원은 그를 종종 떠올리며 이해한다. 무례와 부당함은 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었다. 그것을 꼭 사실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사라진 빛을 찾게 했다. 희원이 기억하는 강사의 가르침과 물음은 그를 나아갈 수 있게 도왔다. 이천 구 년에는 철거된 용산의 공터를 피했지만 이제는 안 피한다. 가혹한 마음과 사실을 바라보면서 그곳을 지난다.
사실을 넘어 걸어갈 궁리를 하게끔 하는 빛은 앞서간 이들에게 있을까. 여성들, 노동자들, 청년들, 동양인들, 이주노동자들, 비인간동물들에게 등불이 들려 있는 걸까. 이 작품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알 수 없다. 존재 만으로 빛이 될 수 있는 걸까. 내가 겪는 무례와 차별이 사실로 굳어지는 과정에 의문을 던져 온 앞선 사람들을 따라 걷고는 싶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보고 걸을 수 있는 빛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 지점에서 아직 내 입장이 없다. 부정과 인정과 의심을 통해 나는 능동적 순종을 벗어나 수치스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지탱해 주는 희미한 빛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