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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학원생 남편 Jul 31. 2023

이끼를 줍습니다

희한한 친구가 생겼다

 무심코 시선이 머문 산책로 구석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다. 



테라리움 : 테라리움(terrarium, 복수형: terraria 또는 terrariums)은 수족관과 상반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토양 및 식물을 포함하는 밀봉 가능한 유리 용기이며 유지 보수를 위해 열 수 있다. 지상이나 물가에서 생활하는 동식물 등을 사육·전시하는 사육장을 의미한다. - 위키백과



 대학원 생활과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꽉꽉 채워 살다 보면 각종 외과 질병에 노출되곤 한다. 손목 터널 증후군, 거북목, 허리 틀어짐 등등 공시와 석사과정을 거쳐가며 걸어 다니는 통증의학과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그러다 결국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줍다가 협착증 증세까지 발현되면서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버렸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러면 혹자는 공부하다가 잠깐 쉬지도 않냐고 하지만 쉴 때 운동하면 나는 언제 쉬냐! 그렇게 말하곤 한다. 몸무게가 꽤나 많이 빠져 60킬로였던 몸무게는 52킬로가 되어버렸고 드디어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살기위한 노력


 허리에 좋은 운동이 무엇이 있나 유튜브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요즘 사람들은 왜들 그렇게 헬스를 하는지.. 과시욕인가 싶기도 했다. 아마 내가 그렇게 몸을 만들지 못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의사들의 허리 관련 영상을 보니 하나같이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 그래서 남들 담배 피우는 시간에 나는 중간에 학교를 걸어보기로 했다.


 이 다짐을 한 것이 매미우는 여름날이다. 나는 왜 다짐을 이 한여름에 했을까 자책하면서 걸었고 잠시 그늘에 앉아 한숨 같은 큰 숨을 내쉬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이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끼는 비단이끼라고 불리는 이끼였던 것 같다. 유난히 잔디 같고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이끼가 바로 그것이다. 이끼는 음습한 곳에 기분 나쁘게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산책로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귀여워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끼를 키운다는 개념이 없었고 산책 코스에 이끼구경하는 곳을 정해놓고 지나다니며 보곤 했다.


 수초어항을 꾸미려고 마음먹고 이것저것 사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사를 가게 되면서 흙을 깔고 수초를 심는 것이 부담스러워 2자(60cm) 빈 어항에 베타 한 마리 넣어놓고 허전한 물멍을 하고 있을 때 알고리즘에 테라리움이 올라왔다. 이끼와 같은 습지식물을 작은 병이나 컵에 키우는 나만의 생태를 만드는 것이 수초항과 비슷했고 이사 가야 할 시점에 공간제약이 덜 한 것 같아 산책로에 있던 이끼를 데려오기로 하였다.


산책로 비단이끼


 이끼를 채집하여 집에 데려오는 것은 분양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건조한 가을, 겨울이 되면 한껏 웅크려 간신히 버틸 식물을 구해주는 느낌도 들고, 또 한편으로 완전한 자연 속에서 데려온 만큼 부지런히 가꾸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끼라는 녀석은 종류도 많고, 각각이 특성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같은 그늘에서 자라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실험실 속 연구생들과 많이 닮아 보인다. 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어찌나 성장하는 모습이 다른지 경이롭기까지 할 지경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성장해서 덩치를 키워나가고, 다른 누군가는 키가 크게 위로 성장해 나가고, 또 누군가는 움직이지 않는 듯이 느리게 성장해 나간다. 


 성장 속도가 어떻게 되든, 그 모양이 세모, 네모든 이끼를 채집해 그에 맞는 테라리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요즘 나의 낙이다. 내 주변의 연구실의 연구생들도 각 자의 성과를 내고 본인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모양의 이끼이고 어느 세상으로 나가게 될까?



유튜브 채널 : https://youtube.com/@graduate_aqua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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