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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테네의 민주정이 탐욕의 덫에 걸리다.
by
Plato Won
Oct 16. 2021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그리스 문명의 상징인 아테네의 민주정을
왜 그토록 신랄히 비판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정치학>에서
왜 민주정을 배척하고 혼합정을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주장했을까?
서양 고대 문명은
그리스 문명으로 이동한다.
청동기 시대 비옥한 초승달 지약인
티그라스, 유프라테스 강과 나일 강 유역에서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철기 시대로 접어들며 지중해 유역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형성된 그리스 문명이
서양 문화의 원류가 된다.
그리스 문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리스 반도는 여러 개의 작은 섬들과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기원전 1000년
무렵까지
씨족ㆍ부족 집단을
바탕으로 한
촌락 사회였다.
그러다 기원전 800년쯤 무역이 늘어난 데다
사회를 외부의 적들로부터 지켜야 했기 때문에
폴리스(Polis)라는 도시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2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폴리스로 이루어졌지만
그중 폴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아테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결성한
동맹의 맹주로, 4년마다 올림픽을 개최하며
유대관계를 강화하였고, 페르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전성기를 맞이 한다.
철학자 플라톤도 청년시절 올림픽에
레슬링 선수로 4번 씩이나 참가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올림픽은 당시
그리스 연합체를 결속하는 축제였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정치적ㆍ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였고.
이 시대 미술ㆍ문화ㆍ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되 소박함이 있고,
지혜를 사랑하되 유약함이 없습니다.
부는 말로 자랑할 대상이 아니라 행동의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가난이 수치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일하지
않는 것이 치욕이라고 생각합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당시 연설문이다.
그러나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맹국들을 종속국으로
만들려다 스파르타가 반발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여
아테네는 패하고 만다.
결국 이때부터 아테너는 몰락해가는데,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승전국 스파르타도
쇠락하여 기원전 4세기 중엽 그리스 북부
변방지역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되며
그리스 문명 전체가 멸망하게 된다.
그리스 문명의 상징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철학이다.
보통 아테네 민주주의를 근대 민주주의의
시초로 보는데, 이는 클레이스테네스가
기원전 507년에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참주정을 몰아내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귀족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500인 회의가 시민의 뜻을 대변하는
중심적 기관이 되도록 했으며 이를 더
발전시켜 정기적인 시민 총회인 민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
그래서 중요한 사안들은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회에서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정착되었누데,
근대 서양인들이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고대 아데네 민주주의는
노예, 여자, 외국인을 제외한 아테네 시민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진 제한된 직접민주주의로
오늘날의 간접 민주주와는 다르다.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장군 등 특수직종을 제외하고는 재판의 배심원들도
모두 추첨으로 뽑는데 반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한 간접민주주의와는 차별된다.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손에 의해
운영되는 정체"
"우리는 사생활에서 관대함을 갖고
교류하며 공적인 일에서 두려움을 갖고
법을 지킵니다."
자유와 평등을 아테네의 민주정의
기본 가치로 내세웠던 페리클레스의
가치는 불과 두 세대 지나지 않아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플라톤은 페리클레스가 그토록 찬양한
아테네 민주정에 그렇게 분노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페리클레스가 찬양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이 정치체제의 썩은 뿌리였다고
플라톤은 진단한 것이다.
플라톤이 경험한 민주정은 전혀 달랐다.
페리클레스의 민주정의 절대 가치인
'자유'는 '무질서'로
'평등'은 '불공정'의 동의어로
되어있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희석되지 않은 자유의 포도주"에
흠뻑 취한 아테네 시민들은
외세나 권력의 부당한 지배뿐만 아니라
관습과 법의 지배까지 구속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윽코 아데네 민주정은
모든 지배의 부정을 뜻하는
아나르키아(anafchia) 무정부 상태로
뒤바뀌어 있었고 아테네는 서서히
멸망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지 않은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나,
똑같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나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한
아테네의 민주정에 대한
깊은 불신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오랜 역사의 고난을 통해 얻은 아테네
민주정이 이렇게 훼손된 이유를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에서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돈벌이 이외에는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
"
자유와 평등이 무질서와 불공정으로
뒤바뀐 아테네의 민주정, 그리고 서양문명의
기원인 그리스 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진
아테네 시민들의 통제되지 않은 탐욕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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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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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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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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