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삼일 프로젝트 May 26. 2017

고구마 헌책방에서

화성에 위치한 창고형 헌책방

어? 고양이다!
이 평화로운 침묵을 깬 주인공은 검정색 고양이 <네로> 였다.

고구마 헌책방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길 84
전화번호 : 031 8059 6096
홈페이지 : ww.goguma.co.kr








개인적으로 여행의 참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인식하고 또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 자신이 지금보다 좀 더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은 나의 편견 혹은 고정관념을 부끄럽게 고백함과 동시에 그것을 깰 수 있었던 유쾌한 장소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경기도를 이루는 31개의 시도 가운데서도 광활한(?) 크기를 자랑하는 화성시의 복판에 위치한 고구마 헌책방. 인터넷으로도 운영을 하고 있고 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등장한 탓에 이름은 낯설지 않았지만 직접 찾아가는 건 처음이었다. 교통체증이 일상이나 다름없는 도로 위에서 지루함을 달래며 고구마 헌책방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보았다. 좁다란 골목에 자리 잡은 작고 오래된 공간, 구석구석 아무렇게 쌓여 있는 책들, 오래된 책냄새(아주 좋아한다!)와 책 먼지들, 등등. 그건 아무래도 부산 보수동이나 인천 배다리 마을에서 보았던 헌책방 골목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샛길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들어온 커다란 창고형 건물의 고구마 헌책방.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헌책방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깨는 강력한 한방이었다. 거기엔 골목도, 비슷비슷한 헌책방들도, 오래되고 낡은 건물도 없었던 것이다. 활짝 열려 있는 입구 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서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입구 옆 명패엔 <영업 중>이라는 글씨가 아무렇게나 쓰여 있었다. 입구 앞에는 창고 안 만큼이나 책으로 꽉 찬 SUV 차량이 있었고 누군가 거기서 책을 꺼내 창고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바로 고구마 헌책방 사장님이었다.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 운전하고 오느라 힘들었겠네. 내가 이 책들 서울에서 가지고 온다고 새벽부터 움직였지 뭐야. 난 책 옮기고 있을 테니 편하게들 둘러봐요. 필요한 책 있으면 말씀들 하시고. 아, 하나만 지켜줘요. 꺼낸 책은 꼭 제자리에 꽂아주는 걸로.”


나와 일행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치 마법에 홀린 것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책들을 훑기 시작했다. “으하하, 이 책 제목 봐! 와 이 책이 있네?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건데. 와! 나 중학교 때 보던 만화책이다! 여기에 옛날  LP판도 있어요!...” 들뜬 마음으로 아이처럼 좋아하던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어느새 각자가 찾은 책 앞에서 자기만의 기억과 경험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없이 서 있는 일행의 뒷모습만 봐도 그가 미소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이 공간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책이 만들어낸 침묵과 공기가 우리를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장님이 일을 하면서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와 바깥의 바람소리, 새소리가 커다란 헌책방을 맑게 채웠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오래된 책 내음이 한가득 들어왔다.






“어? 고양이다!”


이 평화로운 침묵을 깬 주인공은 검은색 고양이 “네로”였다. 사장님이 보살피는 길고양이라고 했다. 네로는 우리 일행을 낯설어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고구마 헌책방 곳곳을 마치 주인처럼 천천히, 당당하게 오갔다. 나중에는 사장님을 보며 뭔가를 보채듯 울기 시작했는데 사장님은 그게 “내가 배가 고프니 얼른 먹을 것을 내놓아라!”라는 신호라고 설명하셨다.


 “언제부턴가 녀석을 위해 이렇게 사료랑 물을 챙겨주는데 글쎄 이 녀석이 그냥 먹지를 않아요. 이렇게 손바닥 위에 사료를 올려놓아야 먹는다니까. 평소엔 그저 예뻐 죽겠는데 바쁠 때 이러면 아주 난감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사장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우리도 덩달아 웃었다.



헌책방을 지키는 고양이, 네로
손바닥 위에 올려놔야 식사드시는, 네로



“주변에 괜찮은 식당? 음, 잠깐만 기다려봐요. 내가 좋은 식당을 하나 알고 있지. 조금 있으면 책 옮기는 게 끝나는데 함께 갑시다.”


몇 권의 책을 골라 계산을 하며 주변의 괜찮은 식당이 있는지 여쭤봤다가 사장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책 옮기는 걸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사장님께서는 “고맙지만 지금 옮기는 게 그냥 옮기는 게 아니라서, 허허. 책 보면서 조금만 기다려요.”라고 하셨다.






사장님이 추천해준 식당은 고구마 헌책방에서 멀지 않은 백반집이었다. 도로변에 위치한 다른 식당과는 달리 이 곳은 차로 조금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는데 고구마 헌책방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장님이 추천하는 백반정식은 정말 맛있었다. 식당 사장님이 직접 만든다는 반찬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사장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해 내 나이가 예순셋이에요. 젊었을 때 문학과 시, 그리고 요 헌책방에 꽂혀서 맨날 헌책방 찾아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업이 되었다오. 중독이지 중독.” 이야기를 듣던 일행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중독이 오래가네요?” “허허, 그게 해결되면 중독이 아니지.” 사장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온라인 판매는 97년부터 시작했어요. (일동 놀람) 서울에서 크게 할 때였지. 그땐 직원들이 열댓 명이 넘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 쓰는 것도 힘이 들고 하나둘씩 정리를 하다가 이렇게 고구마 헌책방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헌책이라고는 하지만 다 상품이에요. 깨끗하게 닦고 분류에 맞춰서 정리를 하지요. 오랫동안 하다 보니 지방에서도 책을 찾으러 오곤 해요. 알다시피 방송에서도 찾아오고. 책 가져오고 정리를 하다 보면 사람이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져요.”





사장님의 눈빛은 건강했고 또 흔들림이 없었다. 그건 책에 대한,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당신은 “중독”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애정”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 한번 아까 고구마 헌책방 안에서 느꼈던 편안한 공기가 떠올랐다. 군더더기 없이 선명했던 공기. 그 공기에 서려 있던,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던 애정과 당당함.


고구마 헌책방과 사장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처음 이 곳을 봤을 때 내 편견이 산산이 부서졌던 순간을 생각나며 얼굴이 화끈해졌지만 한편으론 그 일을 통해서 이전의 나에서 조금은 더 성장하지 않았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고구마 헌책방이 만들어준 그 공기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짧은 여정은 오래오래 곱씹어볼 소중한 여행이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의 흔들림 없던 빛나는 눈빛과 말씀을 생각하며 고구마 헌책방을 닮은 사람, 애정 하는 무언가를 위해 건강하게 정진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글, 박상환
사진, 조혜원/박상환
매거진의 이전글 테이블 하나, 초콜릿 한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